네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 읽기를 시작한 게 맞는 말이다. 얼마전에 버린, 대학 시절 샀던, 같은 제목의 첫 책은. 그냥 폼 잡으려 들고 다닌 것에 불과했으니, 읽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 번째란 말이 정확하다.
첫 번째 읽기의 의도는 끝까지 읽어내어 보자는 인내의 실험이었으니, 무엇보다 내 독서력 과시에 한 몫을 했다. 이후 2~3년 쯤 지난 두 번째의 읽기는 서간에서 문장의 일부를 발췌하거나 기록해 두는 데에 몰두하였으니 일종의 사전적 책읽기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옳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또 다른 읽기를 모색한다. 두 가지의 목적을 철저히 배제하고 읽어 보는 것이다. 지나가며 읽고, 시간 나면 읽고, 허전할 때 읽고, 용기가 필요할 때 읽고, 욕이 필요할 때 읽고... 마치 교인의 성서 읽기와 같이 읽기로 한 것.
내 두서 없는 생활에 미루어 보면, 적어도 한 두 해 정도는 내 책상에 놓여 있지 않을까? 그때마다 철학자는 나를 비웃을 것이다. “이놈아! 아직도 나의 사상에서 떠나지 못하는가? 내가 머리를 피안의 모래 속에 파묻지 말고 의연하게 쳐 들어라 했거늘, 여전히 책 따위의 문장에 머리를 파 묻고 있다니...”
아~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네. 읽어도 읽어도 샘 같이 솟아 오르는 게 또 있으니 나는 책을 또 읽는다. 철학자께서는 부디 너그러이 용서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