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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ong Jan 09. 2024

하우스 타임랩스

이상하고 아름다운 집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하여

 <이상하고 아름다운 집>은  8년째 살고 있는 집이기에, 사실 우리집의 유별난 점이나 독특한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익숙하고 편한 우리집일 뿐이다. 집이 평면이 아닌 수직으로 이어졌다는 것 때문에 일반 집들과 다른 특성들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족의 삶이 유별나거나 독특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집>을 쓸 때, 수직으로 세워진 협소주택의 삶보다는 도심 속에서의 주택 살이 이야기를 대부분 쓰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집의 구조를 상상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상상이 안 된다는 분들이 많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집의 구조에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집의 구조를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집을 상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일상을 예로 들어 집의 구조를 잘 떠올려볼 수 있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4층에 있는 침실에서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후, 나는 3층에 있는 티비로 음악을 틀고, 다시 2층으로 내려와 아침을 간단히 준비한다. 남편이 먼저 출근을 하고 4층에서 여전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면, 아이들이 눈도 잘 못 뜬채 3층에 내려와서 누워 있는다. 아이들을 잘 도닥여서 2층 식탁에 앉게 한 후 아침을 먹이면, 아이들이 차례로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가게 된다. 둘째까지 어린이집 셔틀을 태워 보내면 나는 집에 들어와 멍을 때리면서 2층의 식탁에 앉아있다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고 3층으로 이동한다. 3층의 전자피아노에서 피아노 연습을 30분 정도 한 후 기지개를 켜고 3층 세면대에서 아침 세안을 한다.

 그리고 4층부터 시작해 보통 2층까지 청소를 한다.(대충) 2층 식탁에서 노트북을 켜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한 후, 5층의 사무실로 이동해 택배 포장이나 재고 정리 등 브랜드 관련 일 등을 한다.

 오후가 되어 아이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3층에서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본다. 첫째는 4층 자신의 방에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다같이 옥상 테라스에 나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여름에는 아쿠아플레이를 이용한 물놀이를 하기도 한다. 2층에서 5층까지 옥상까지 주방집기를 옮기는 것이 귀찮아서 많이 바비큐를 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는 일부러 옥상에 앉아 브런치를 먹으며 드디어 찾아온 봄을 만끽하기도 한다.

 나는 2층에서 유리 난간으로 3층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틈틈히 보면서 저녁 준비를 한다. 저녁을 먹으면 3층에 있는 히노끼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더 놀거나 책을 읽다가 4층에 올라가서 잠이 든다. 주말이나 아빠의 체력이 아직 남아있는 평일이면 자기 전에 편을 나눠 층을 오가며 너프건으로 총싸움을 하지만 말이다.

 1층은 창고로 이용하고 있어서, 현관에 들어와서 외투를 걸어놓고 2층으로 오면 거의 이용할 일은 없다.

 그 많은 층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걱정 반 의심 반으로 볼 때도 있지만, 사실 낮에는 2층과 3층을 주로 사용하고 잠을 자거나 다른 일이 있을 때 4층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다른 층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직 <이상하고 아름다운 집>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평면인 30평대 집을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방을 잇는 복도가 계단이라고 생각하면 더 쉬울 수도 있다. 계단은 열 세 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린 아이들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서 한 번에 일층에서 오층까지 오르지 않는다면 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몇 초씩 수명이 연장된다는데 우리 가족은 평균 수명보다 몇 년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계단이 많은 집은 당연히 노년으로 접어들거나 노년의 분들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층을 가진 집에서 산다는 것은 여러 개의 다채로운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사무소에서 우리집의 테마를 <높은 방, 많은 창, 깊은 삶>ㅇㅇ 작은 집으로 정하셨었는데 층을 이동할 때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장면을 보면서 건축가의 빛나는 통찰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건축면적 6.84라는 극도의 제한된 조건을 극복한 건축가의 용기 있는 설계가 도심 속에서 다채로운 삶을 꽃피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눈이 오는 오늘의 다채로운 풍경들
여름이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시다면 건축 설계도의 일부. 수정된 부분이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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