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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Apr 23. 2022

군검사 도베르만 총기 난사 사건 편을 보며 한 생각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로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고 말한다. 확실히 내가 훈련소에 처음 갔던 2012년 정도와 비교했을 때도 요즘 군대에서 보내는 생활환경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이거는 어디까지 '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 환경이 변했을 뿐이지, 군대에 가는 사람들이 변한 것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또 다른 조건을 말하고 싶다.


바로, 폐쇄적인 집단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의 여러 생활환경이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많은 개선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폐쇄적인 환경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폐쇄적인 환경은 우리가 다닌 초·중·고등학교와 거의 한 끗 차이로, 특정 세대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해 외부와 조금이라도 차단이 되는 곳에서는 사람의 숨겨진 본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착한 아이가 학교에서는 보이는 일진 혹은 보이지 않는 일진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애초에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일진으로 지내며 폭력을 일삼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사람이 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쓰레기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이상, 아니,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그 쓰레기 같은 본질이 바뀔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하다.


오히려 겉부터 이미 '나는 쓰레기요.'라고 말하면서 남을 괴롭히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더 최악의 쓰레기는 겉으로는 쓰레기가 아닌 척하면서 교묘히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남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부류들이다. 그런 부류들은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변명 삼아 처벌을 받을 때도 미꾸라지처럼 피해 가거나 혹은 약한 처벌을 받으면서 더욱 잔혹해진다.


현재 TvN의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의 13화와 14화에서 볼 수 있었던 마 병장이 그런 인물이다. 그 녀석은 누가 보더라도 겉과 속은 모두 쓰레기 그 자체이지만, 은행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적어도 사회생활을 하는 바깥에서의 이미지는 깨끗하게 유지를 하면서 일종의 권력으로 이미지를 가꾸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오늘날 군대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모든 사회생활에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썩어빠진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놈들이 힘과 부를 가지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그 힘과 부를 손에 넣은 사람은 쓰레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힘과 부를 아무런 노력 없이 물려받은 자식 세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길뿐만 아니라 지나친 결과 지상주의와 경쟁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야말로 쓰레기 혹은 괴물로 일그러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덕분에 다소 잠잠해지기는 했어도, 본격적으로 학교에 나가서 수업이 듣는 일상이 회복된다면 우리는 또 어렵지 않게 학교 폭력으로 누군가가 자살을 했다거나 혹은 학교 폭력으로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건 사고는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일어나는 그 사례는 우리가 쉽게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학교생활이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되었다고 해도 학교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폐쇄성은 달리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더욱더 영악하고 잔혹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전에 내가 학교 폭력을 겪었던 시절처럼 눈에 보이는 폭력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면서 피해자에게 살아가는 것 자체를 고통으로 만든다.


그나마 내가 학교 폭력을 당했던 시기에는 스마트폰은커녕 일반 휴대폰도 아직은 아이들에게 보급이 원활히 되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폭력은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나갈 때마다 "오늘 몫이다."라면서 달려와서 패는 녀석을 비롯해서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반 아이들과 오히려 그 녀석을 감싼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빠득빠득 갈린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만약 우리 한국 사회가 미국처럼 총기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나라였다면, 내 손에 실탄을 장전된 총이 쥐어져 있었다면, 나는 다음 날 총을 들고 가서 그 녀석과 모두에게 총을 갈겨버리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지금이라도 그런 권한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때 그 시바새끼들을 찾아가서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 그 녀석만 아니라 그 녀석들의 가족 모두 다 말이다.


쓰레기는 어차피 쓰레기밖에 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쓰레기를 만든 것도 쓰레기이기 때문에 함께 소각을 해버려야 한다. 군대처럼 확연히 폐쇄성을 띠는 집단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본질이 너무나 분명하게 잘 드러난다. 학교와 직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수 모여서 집단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곳에는 늘 이런 폐쇄성이 함께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이 있기 마련이다.


대다수 그런 폭력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들은 정말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최고의 쾌락으로 느끼면서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문신을 몸에 그린 양아치와 달리 보이지 않는 잔인함을 지닌 쓰레기들은 악마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 넷플릭스 드라마 <D.P>도 그랬고,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다루어진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이후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그때의 경험을 통해 더욱 밖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게 아닐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건이 어디까지 극단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걸치고 있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잠에 드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잠에 들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힌 채 이를 악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내가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너무나 영악한 사람들이 늘어난 오늘날 사회에서 미꾸라지처럼 살아가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인간이 지닌 이기성, 잔혹성을 버릴 수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현재 새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만 보더라도 딱 답이 나온다.


나는 학교 폭력을 겪었던 그 시절부터 약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냥 이런 세상은 내일 소행성이라도 충돌해서 그냥 함께 모두 몰살을 당해버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그래도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눈앞에 있는 책들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곁에 책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손목을 그으려고 했던 시간이, 폭력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남몰래 수많은 항정신제와 수면제를 모았던 시간이,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추락했던 시간들이 지금으로 이어져 온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불필요하게 다수의 사람들과 얽히는 일 없이 조용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이거면 정말 잘 해낸 게 아닐까?


괜스레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13회와 14회를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지 못해 괴로웠고, 내일이 오는 게 숨 막혀서 죽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내일을 기다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에 들떠 살아갈 수 있으니 나는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부디 앞으로 내 목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이 글은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를 보고 쓴 감상인 동시에 나의 넋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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