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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Oct 26. 2021

브런치 공모전 응모 후기













내 안에서 영향력을 잃은 그 애는 늘 조그맣게 속삭일 뿐이었다. 힘없고 불쌍한 목소리로.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엠케이. 나는 그리고 싶어. 표현하고 싶어. 작가가 되고싶어."


그러면 내 안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애들이 튀어나와 득달같이 입을 틀어막았다.


"밥벌이나 제대로 하고 떠들던가, 제 앞길도 못 챙기는 게 무슨 창작이야. 빚이나 갚아." <현실성>


"쥐똥만한 재능으로 어떻게 성공을 해? 니가 유명해질거 였으면 진작에 유명해졌지." <조소,비아냥>


"그렇게 그리고 싶으면 그려, 누가 뭐래? 하지도 않으면서 떠들기만 하는 너 같은 게 제일 꼴불견이야."<비난>


"해도 안 되는건 그만해, 엠케이. 그냥 좀 편하게 살자. 그렇게 괴로워 할 시간에, 백지 앞에 앉아있을 시간에 유튜브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쉬어." <동정>





여름의 어느 날, 낙서




내 안의 그 애를 져버릴 수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속만 부글거리지 별 진척도 변화도 없었다.


꾸역 꾸역, 순대창자에 당면 밀어넣듯이 억지로 쓰고 그리던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내려다 실패했던 공모전 공고가 떴다. 10월 24일, 바로 어제가 마감일이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또 다시 마감을 샀고, 몇 주간 매일 매일 글을 썼다. 그 때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 애를 의무적으로 키운 자식 취급하면서,

매일 매일 증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자신을 유명하게 해달라고 한 적 없었다. 대단해지게 만들어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의심과 불안, 불확실함, 무력감, 허탈감, 좌절감,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해내고 있는 중이라 우는 소리도 낼 수 없는 억울함, 그런 감정들과 징그럽게 뒤엉켜 싸우던 나날들 같다.


남들이 보기에 내 그림과 글이 태평해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쓰는 매일 매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어제 나는 브런치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출품을 하고 난 뒤에 소감을 말하자면, 아티스트 웨이에 나왔던 이 글귀와 비슷하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음 두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자율성이 강화되고 회복력과 기대감, 흥분을 장착한 새로운 자아가 출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창작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솔직히 자율성이 강화되고 회복과 기대와 흥분을 장착한 신개념 슈퍼파워 자아가 탄생... 한 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구체적인 창작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생긴 것. 이거 하나만큼은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공모전 출품을 하면서 편집자의 시선으로 내 글과 그림을 갈무리해보니까 '이 글과 그림이 과연 돈 주고 사서 볼 만큼 값어치가 있는지''상품성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까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몇 년은 더 그리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한마디로 주제파악을 했다는 소리 입니다.)



12월에도 매일 글쓰기 마감을 결제 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쓰기 괴로워도, 무력감과 허탈감과 징그럽게 뒤엉켜 싸워도, 결국은 안 쓰는 삶보다 쓰는 삶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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