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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Oct 27. 2021

까만 숭늉 같은 잠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할 작은 선물은 기억해두고 있다.


엄마에겐 말랑말랑한 엔젤 쉬폰, 언니에겐 신선한 크림이 듬뿍 들어있는 크림빵, 룸메이트에겐 식도염을 달래줄 소화제와 타이레놀. 그렇다면 나는? 나를 즐겁게  작은 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편의점에 들러 '까늉' 샀다.

원래도 보리차를 좋아하는데,  흑미 숭늉차는 특히 구수한 맛이 난다. 혼자  안에 앉아 까늉을 벌컥 벌컥 마시면서 아이패드를 . 어제 새벽,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던 노래가사가 귀에 남아서 끄적 끄적 받아 적어본다.

벌컥 벌컥 숭늉을 들이키면서 점점 풀리고 있는 태엽같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가, 멈춰세우다가, 앞으로 지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있어 멈춰선 시간은 뭐였더라. 계속 거꾸로 돌리고 있는 시간은 뭐였더라. 하긴, 기억해내봤자 소용없다. 그런 시간들은 대부분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음료수를  병을  비우고 나니까 태엽이 느슨하게 풀린  처럼  몸에 힘이 빠졌다. 오늘 나에게 줘야  진짜 선물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할 잠이 필요하다. 칠흑같이 새까만 잠이, 통과하고 나면 감각이 둔해지는 잠이 필요하다.  속에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실망도 하지 않는다.  말은, 지금 나는 애쓰고 노력하고 기대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실망하는 일을 멈추고 싶다는 뜻이 된다. 그래. 이제 나는 그저  비어있고 싶다.


까늉의 빈 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제 얼른 이부자리에 누워서 깜깜한 수마 속에 빠져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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