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는MK Nov 03. 2021

치즈달에서 크래커를 먹는다면



다이소에 갔다. 수업 재료를 사기 위해 간 것뿐이지만, 어쨌든 오늘은 여행가의 마음으로 살기로 한 두 번째 날이 아니던가.


한 번도 들러보지 않은 과자 코너에 들러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과자를 사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한 여행가의 자세. 그렇다 해도 깔라만시 몽쉘과 사과향 초콜릿 같은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굳이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것은 슬쩍 건너뛰는 것도 여행가의 지혜이다.


선반에 걸려있는 작은 봉지들을 쳐다보다가 익숙한 이름과 눈이 마주쳤다. '수제'에만 빨간색 테두리가 그려져 있는 달고나 사탕. 게다가 군고구마 맛이라고 적혀있다. 가운데에는 쳐피뱅을 한 토끼가 뽕 맞은 표정으로 달고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옷을 벗은 고구마들이 사백안이 되어 토끼가 만든 달고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의미불명의 일러스트가 우스워서 순간 웃음이 샜다.



수제라고 강조되어있던 패키지와는 달리, 달고나는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네모 반듯했다. 그리고 진짜로 군고구마 맛이 났다. 살짝 탄 껍질 맛이 났다는 게 문제였지만. 예상을 깨는 어이없는 과자 때문에 웃음이 픽픽 터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중얼거리며 몇 개 집어먹다 보니까 텅 비어버린 봉지. 뭐야. 천 원짜리 달고나인데 이렇게 양이 적다고? 또 웃음이 터졌다. 아아, 아무래도 이거 내가 몰랐던 취향 같은데.





이렇게 어이없이 웃긴 과자 말고도 내 취향에 꼭 맞는 과자를 떠올려 본다면, 그것은 바로 치즈 크래커. 애니메이션 <월레스 앤 그로밋>에 나왔던 식으로 치즈 크래커를 먹어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자동으로 옷을 입혀주고 토스트를 구워주는 기계를 만들어낸 이상한 아저씨 월레스는, 똑똑한 강아지 그로밋과 함께 치즈를 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 곳은 온통 치즈로 된 달. 그곳에 도착해 돗자리를 펴고 치즈를 스윽 잘라 크래커에 두툼하게 얹어서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 나도 한 번만 그렇게 먹어볼 수 있다면.


월레스처럼 나 역시 짜장이를 데리고 치즈 달로 피크닉을 떠나는 상상을 한다. 부드럽고 신선한 치즈를 크래커에 얹어 원 없이 먹고, 배가 부르면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곳은 어린 왕자의 소혹성과 굉장히 가까운 곳일지도 모른다. 소혹성은 너무 작아서 의자를 조금만 옮기면 노을을 마흔네 번이나 볼 수 있다던데, 윌레스의 치즈 달도 만만치 않게 사이즈가 작아 보이니 그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짜장이와 크래커를 입에 물고 엉덩이를 옆으로 조금씩 옮겨가며 노을을 구경한다. 한 마흔네 번쯤 구경해서 노을이 질릴 때쯤에는 푹신한 치즈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어때, 마음에 드는 노을이 있었어? 네 취향은 뭐야?" 하고 나의 작은 친구에게 다정하게 물어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하와이풍 써니 사이드 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