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는MK Apr 01. 2023

미혼의 마흔의 독립

프로포즈는 내가 나에게 하고 싶다



굳이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면, 나는 나에게 하고 싶다.


혼자 턱시도도 입고 웨딩드레스도 입을 수 있다. 반지는 유리로 된 반지를 직접 만들고 싶다. 신혼여행은 그토록 꿈꾸던 스페인과 하와이로 훌쩍 떠나서, 마음에 들면 거기서 몇 달 눌러살다가 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사는 상상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해왔다. 그때의 나는 두렵다거나 초라하다는 감정을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비단 철없을 때여서 현실을 모르기에 가능했던 상상이었을까? 아니.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되면 '독립된 존재'가 된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마흔이 되어서 자주 들었던 멘트 3 세트를 나열하자면 '애기는?''결혼은?' 그다음은 '애인은?'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아기도 낳지 않았고, 4년을 사귀었던 애인과는 작년에 헤어졌다. 그렇다고 떼돈을 버는 유명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주수입인 방문수업 강사 일과 드문 드문 들어오는 외주 프리랜서 , 가끔 학생들과 함께하는 강의 등등, 살아남으려고 눈에 띄는 지푸라기들을 움켜쥐다 보니 어느덧 N잡이 되어 있었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인데,  같은 미혼의 마흔  여자 사람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어디가 모자라서' 시집을  갔냐는 말을 인사말처럼 듣곤 했다. 그래서 가끔은 억울했다. 나는 결혼한 사람한테 '뭐가 대단해서' 시집갔냐고 물어본  없고,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 '뭐 하다가  나이가 됐냐'라고 물어본 적도 없다. 나는 실례라고 생각하는 말들을,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다 보니, '어떻게 가드를 치고 살아야 미혼의 마흔이 짜쳐보이지 않을까'를 궁리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인데 그러느냐고? MZ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  년이  되지 않아, 어르신들의 머리와 무의식이 따로 노는 시대. 그런 어르신 중에 우리 부모님도 있고 나의 일터에 있는 학부모  직장 상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섞여 살았던 나도 가끔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선입견에 깜짝깜짝 라곤 한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나조차 스스로를 선입견으로 대할 때가 많았고,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나를 오래도록 징그럽게 미워하기도 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의 나는 매우 건강한 혼자였던 것 같다. 물론 집에는 가족이 있고, 학교에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씩씩한 꼬마였다. 혼자서 시장길을 구경하며 휘적휘적 잘도 싸돌아 다녔고, 때 되면 미술학원으로 뛰어가 그림도 실컷 그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점점 자라면서, 나이에 대한 역할과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서부터, 내 또래의 사람들과 삶의 형태가 바뀌면서부터, 나의 부모가 병들고 늙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점점 '혼자'라는 것은 매우 두렵고 불리하고 불온한 것이라 굳건하게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독립하고 싶다. '누군가 날 구해줬으면...' 하고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독립. 나이 들어갈수록 찾아올 외로움과 고통이 두려워 관계로 옭아매려 하지 않는 독립. 삶의 어두운 이면을 잘 다룰 줄 아는 독립. 그렇게 내가 나를 데리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 중 그 누구와도 다치지 않고, 서로 배시시 웃으면서 귀여운 머그컵을 선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서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그런 쁘띠한 독립의 한 장면을 꿈꿔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