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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Jun 14. 2024

나는 살아있는 그대를 보았어요.

무엇을 보아야 할지 정해야 할 때







샤론. 이제는 제법 녹음이 짙어졌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우리의 시작도 떠오릅니다. 늦봄의 끝자락에 작은 산촌마을에서 자리 잡아가던 하루 하루가 생각납니다. 그 즈음의 저는 사실 굉장히 초조했어요.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부랴 부랴 인제로 내려오면,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갈 수 없었어요. 왕복으로 500km남짓, 이동하느라 고속도로에서 버리는 시간, 바닥난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 서울에서 마저 못한 서류를 처리하는 시간.... 나중엔 밥 해먹고 치우는 시간까지도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나는 대체 무얼 그리고 쓰려고 했던 걸까요? 여기에서 나는 대체 무얼 해내려고 했던걸까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그 날도 무언가를 썼지만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채로 시무룩히 있다가, 마침 먹거리가 다 떨어져 샤론과 함께 장을 보러 갔어요. 인제 산골짜기를 구불구불 돌아 내려가면서 그대가 질문을 해왔습니다. 엠케이. 여기에서의 나날이 어때요? 저는 풀이 죽어서 대꾸했어요. 사실 제가 잘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서울에서는 '인제에 가야지' 그 생각만 하면서 부랴부랴 일을 끝마치고... 인제에서는 서울에 있을 일들을 걱정하느라, 그리고 무언가 해야내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시간을 허투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귀하게 얻은 기회이니까 정말 잘하고 싶은데..."


거기까지 말하다가 제가 '으악' 소리를 질렀어요. 도로 갓길에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의 시체를 봤기 때문이예요. 이야기 하다 말고 갑자기 소리 지르는 저를 보고 샤론이 더 깜짝 놀라서 왜 그래요? 하고 물어왔어요. 저 방금 고라니가 죽은 것을 봤어요. 너무 불쌍하고 끔찍해요. 그러자 샤론이 제 손을 감싸쥐면서 그렇게 말해왔지요.


"저런, 놀랐겠어요. 그런데 저는 죽은 고라니를 보지 못했어요. 살아있는 그대를 보고 있느라."


샤론, 그 때의 그 한 마디가 저를 얼마나 깨닫게 했는지 몰라요.


그래요. 샤론은 살아있는 나를 보고 있었어요. 인제에서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해 왕복 500km를 마다하지 않고 엑셀을 밟았던 나를. 창작의 시간을 얻었기에 더욱 소중히 살아내고 싶어하는 나를.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매 시간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홀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있는 나를. 샤론의 시각으로 인해 제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이미 귀한 시간을 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잘해내고 싶은 부담감을 보고 있었습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산과 강과 풀과 살아있는 우리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고라니의 시체를 본 것 처럼요.


삶 위에는 그 모든 것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에 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생계에 대한 걱정, 결정에 대한 책임, 선택에 따르는 득과 실, 만남과 이별. 그것까지 서울에 고스란히 놓고 올 수는 없었어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좋은 것이 있으면 싫은 것도 있었어요. 인제에 와서 아름다운 시간을 얻기 위해 서울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고, 불편함이 있었고, 체력 소모가 있었어요. 그것은 어쩌면 참으로 당연한 것이었어요. 그러니, 모든 것이 다 놓여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향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은 또 다르게 쓰여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예술활동을 지속하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단 사실을 아실거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을 이어나가죠. 그럼에도 남들은 탐구하지 못한 깊이있는 자신만의 표현을 지속한다는 건 인내할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 화가 바바라 카스텐


제가 살아있는 한, 경제적 고민과 생물학적 나이에 따르는 걱정과 선택에 대한 리스크는 계속 될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게를 바라볼지,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를 바라볼지는 제가 선택하는 것이었어요. 나의 시간을, 인생을 어디에 쓸지는 오롯이 제 선택이지요. 맞아요, 저는 저의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지 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것이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 진짜 '나'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었습니다.



24/6/14/@MK


(+) 24/6/14일, 샤론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https://m.blog.naver.com/lotus6948/22347956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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