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향하는 길
샤론, 우리가 인제로 향하던 5월 1일을 기억하시나요? 그날의 드라이브를 회상해 봅니다.
저는 그 주간 내내 혼이 쏙 나가 있었어요. 4월 22일의 만남 이후, 인제로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그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게다가 그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다 내가 자초한 일들이었어요. 습관처럼 YES 하는 일, 불안해서 YES 하는 일, 사랑받고 싶어서 YES 하는 일... 돈 때문에, 늘 하던 거니까,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하는 그런 일들. 그 속에 파묻혀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진짜 내 마음'은 외면하고 있으니, 거기서 생기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계속 다른 곳으로 정신을 팔고 있었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SNS를 보는 것- 즉, 회피하는 습관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회피의 습관은 비단 일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제로 가겠다고 한 것은 분명 나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내 사정'이었습니다. 내 선택으로 인해 생긴 파장들이 좋은 모습으로만 드러나지는 않았어요. 일하기로 했던 곳에서 날짜 조율로 핀잔을 듣고, 강아지에 대해 책임감 없다는 소리도 들었고, 돈을 얼마나 벌고 무슨 일을 하기에 거기까지 가냐는 가족들을 잘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대충 얼버무리고, 약속을 깨뜨리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제 모습이 드러났어요. 바로 '사랑받지 못하는' 내 모습이에요.
<사람들에게 잘못한 나를 편들어 주지 않는 나, 그런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 또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나. 하지만 그 조차 거부당하는 나.> 좋은 사람으로 있지 못하면,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이해받지 못하면- 나는 나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타인을 통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확인받지 못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저를 보게 된 거예요.
그것은 마치 껍데기가 다 벗겨진 채 맨 살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았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징징거리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비난받고 싶지 않아요. 나의 못난 모습, 나도 싫어요. 그러니까 저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식의 어린애 같은 마음을 꽁꽁 싸매고, 목구멍에는 뜨겁게 달궈진 억울함을 삼킨 채- 그러나 그 모두가 내가 자초한 것이니 결국은 내 탓이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샤론을 만나러 간 거예요.
샤론의 집 앞에 갔을 때, 어쩐 일인지 그대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애도해야 할 일이 있다고 전해오던 그대의 눈가가 부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은 제 눈도 그렇게 부어있었지요. 무슨 슬픔이 있었는지 말로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어요. 밤새 베갯잇을 적시고 만났다는 것을.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첫날의 텐션 치고는 매우 차분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속도대로 고속도로를 향했습니다.
인제로 향하는 길에서 나눈 모든 것들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차 안에서 고요하게 울려 퍼지던 음악, 자다가 깨다가 울다가 간간히 나누던 이야기들, 갈수록 짙어지는 녹음, 모양이 계속 변하는 구름... '사람을 위로하는 건 역시 자연이구나' 생각했다가, '아무리 슬퍼도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졸리면 쉬어야 하는 게 사람이로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가, [가평휴'개'소]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빵 터져서 한참을 웃으며 '이 와중에도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네, 그랬어요. 그대는 누군가를 잃어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기에, 나는 스스로를 감싸주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그런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잠시 기댈 수 있었나 봐요. 그 기대는 경험이 [가평휴'개'소]와 같은 가벼운 말장난을 보고 순간 까르르 터졌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웃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꼭 필요했던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사람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안에서 성립된다.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고유한 품위를 발견하는 것. 이제부터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모든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나와 완전한 하나로 일치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쏟아야 한다.
참 소중한 나 - 안젤름그린
나는 완벽해지려고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타인에게 늘 사랑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부족함과 아픔과 그림자까지도 모두가 나이니까요. 그 받아들임의 과정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런 나 임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다정하개' 기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P.S: 당신이 왜 특별했는지 이 글을 적으면서 알았어요. 샤론은 관계에서 오는 상실이 아니라 사랑을 남기며 그 품위를 갖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대와 세속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받는 존재, 사랑이 필요한 존재, 무언가를 원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로 있었기에 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우정, 영원하개.
24/6/8/@MK
(+) 24/06/08 � 샤론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https://m.blog.naver.com/lotus6948/223473205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