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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May 31. 2024

쥔 손을 풀어야, 새 삶을 잡을 수 있어요.

4/20일, 무사하지 않았던 날들에 관하여 








샤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그때의 저는 참 무사하지 않았던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4월 20일,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무사 워크숍에 가기까지 저는 근 한 달간 어떤 감정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 감정은, 참 인정하기 싫지만, 제가 저 '혼자서는' 창작하기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쳐다봐주는 감각이 있을 때에만 겨우 창작을 해냈습니다. '혼자서 하고있다'는 그 느낌이 아주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떼쟁이 같은 내가 되었을까요. 이런 나는 내가 생각해도 별로인데, 그 별로인 나를 자꾸만 누군가에게 맡기려고 하니- 얼마나 더 별로였는지 몰라요.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에게 '착하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착하게 굴테니까 대신에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이 외로움을 좀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식의, 매우 비굴한 착함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부로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혹시나 그런 나를 들킬까봐 더 과하게 배려했습니다. 마음 안 쪽에서는 외로움에 시달릴까봐 꾹꾹 눌러담기 급급했지요.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쓰다보니 창작할 힘이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요.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되면 될 수록 혼자인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어째서 정 반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이것은 진짜 '나'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나를 찾아야 했습니다. 크레파스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거침없이 그리고 몰입하던, 그렇게나 창작을 사랑하던, 나의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무사 워크숍장에서 샤론과 처음 만났을 때, '와, 엄청 비싼 고양이가 사람이 된다면 저 모습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뒤의 나머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워크숍장에서 제가 반복해서 외쳤던 그 한 마디만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어! 나는 살아있다고! 나는 살아있단 말이야!] 처음 제가 외치려고 했었던 말은 분명 [한다!] 였었는데, 그 말은 어디로 쏙 들어가고 [나는 살아있어!]만 연신 외쳤던 걸까요. 아마도 깊숙한 곳에서 갇혀있었던 진짜 '나', 본투비 엠케이가 [여기 살아있다고] 부르짖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생명의 외침이, 제발 '나'로 살아있고 싶다고 했던 진심의 진동이, 샤론의 마음에 가 닿았던 모양입니다. 다음 날, 샤론에게서 차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YES를 했습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극 내향인이거든요. 그런데 샤론 앞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그 편안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 편지를 쓰면서 지금에야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그래요, 저는 샤론 앞에서 눈치를 보지 않았어요. 뭔가를 들킬까봐 불안하게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내가 '착하게' 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줬던 부분인 '과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유일하게 인정받았던 '그림'으로 내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샤론은 나를 '눈매가 선하고 마음이 깊은 사람' 이라고 말해주었어요. 샤론은 나조차 보지 못했고, 신뢰하지 못했던, 그런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는 그 날 쉬지도 않고 세 시간을 이야기 한 뒤에, 인제 <청년작가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합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풍선처럼 부푼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깨달았어요. 샤론과 만났던 그 공덕동은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소 끌려가듯이 억지로 일하러 가던 아파드 단지였다는 것을요.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나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니!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장소와 기억은 변한 게 없는데, 그저 딱 하나- 내 마음이 변하니까 삶에 대한 감각이 정 반대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은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진짜 '내'가 된다면, 이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삶에 대한 나의 감각은 바뀌겠구나. 내가 인제로 가는 이유는, 사람들을 배려 하고 쓸모를 인정 받고 사랑 받아서 존재가치를 느껴오던 가짜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구나.' 


'나는,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거로구나.'


가슴이 두근 두근, 뛰기 시작했습니다. 



24/5/31/@MK



                            

                                                                                                                      


(+) 24/06/01 � 샤론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lotus6948/22346571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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