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의 수행을 해내리라 다짐했어요
샤론. 한옥집 앞에 산딸기가 한창 무르익었습니다. 저는 이번 주 내내 산딸기를 딴 것 같아요. 집 주인분께서 올해는 알이 작아서 내다 팔지 않을거라고, 상하기 전에 부지런히 따서 먹으라고 딸기를 담을 바가지를 몇 개나 건네어 주셨거든요. 밭에 가보니까 정말로 딸기들이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딸기를 따면서도 먹고, 요거트에 넣어서도 먹고, 빵에도 끼워 먹었습니다. 그래도 도통 줄어들지 않길래, 이번엔 잼을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옆 마을에 사시는 분을 만나러 내려가는 길에 조그만 유리병을 사고, 꽃병도 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들꽃을 따왔어요. 잼을 선물해줄 친구들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웃기도 했고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산딸기를 바글바글 끓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번 주 나의 식사와 생활과 지금 이 순간을 바꾸어 놓은 딸기에 대해서.
주인 어르신에게 바닥에 떨어진 딸기가 너무 아깝다고 하니까, 허허 웃으면서 그러셨습니다. '아니, 때가 되서 다 익으면 바닥에 떨어지는 거지 그게 뭐가 아까워요. 땅에 그대로 두면 거름 되서 좋고, 줏어다 먹으면 달아서 좋고. 다 좋지.' 겨울부터 돌보고 가꿔온 딸기가 바닥에 다 떨어져도 내년은 더 달아져서 좋을거라고, 누가 먹든 달았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그 넉넉한 마음.
5월 중순, 저는 인제가 아니라 제주에 가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산딸기를 바라보는 마음과도 참 닮아있습니다. 저는 제주의 볍씨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올해 창작자로 살아 갈 수 있게끔 큰 도움을 주셨거든요. 마침 삶의 예술학교 멘토인 재형님의 팔순 잔치가 있어서 볍씨 학교를 방문하고 잔치에 합류 하게 되었습니다. 볍씨에서 겨우 하룻밤을 잤지만 그 날의 경험은 아주 강렬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볍씨 친구들은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직접 솥밥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친구의 수저에 먼저 올려놓아 주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볍씨 친구들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명이 있는 것이 음식이 되어 제 생명을 흐르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낮에는 그들이 직접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서, 커다란 나무 기둥을 남녀 구분 없이 똑같이 짊어 옮기고. 서까래를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해가 저물고 나면, 다 함께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합창 연습을 하고 하루를 회상하며 저널링을 했습니다. 모든 일과를 마친 뒤에는 200배도 했습니다. 그 일정을 한 치의변명도 없이 매일 매일 모두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볍씨 친구들은, 말 그대로 수행자이자 이미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내 몫의 밥을 도저히 다 비우지 못해서 옆 친구에게 '한 입만 먹어주라'는 부탁이나 했었지요. 그들과 지내면서 알았습니다. 몸이 고통스러울까봐 나에 대한 수행은 슬슬 피하기만 했던 나 자신을. 108배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진짜 가르침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이미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목격하는 것 - 그 자체가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요. 멘토 재형님의 팔순잔치에서도 마찬가지 경험을 했어요. 인간의 본질을 깨닫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살아오신 삶, 제주에서 공동체의 기반과 틀을 다지기 위해 일생을 걸어온 한 사람을 제 눈으로 목격하고 온 것입니다.
박완서: 그 자리에서 선생님을 뵈면서 '사람이 저렇게 늙을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의 늙음은 기려도 좋을만한 늙음으로 여겨지니 신기해요. 어느 추모 시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 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그리고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평소에 많이 생각하잖아요? 부재하지만 제 생각 속에서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피천득: 네, 부재 속에서도 나의 글은 다른 이들의 생각 속에 존재하게 되겠지요.
<박완서의 말> 박완서
저는 인제로 돌아오면서 나의 수행을 해내리라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노력한 것이 족족 내가 원하는 형태로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마치 집 앞의 산딸기 처럼 무르익었어도 '상품'이 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썩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의 거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밤 새워 그리고 쓴 것이 조용히 소리 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렇게 사는 나를 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영감을 얻었다면.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산딸기가 무엇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 만으로 자기만의 열매를 맺고 세상 속에서 사그라진 것 처럼, 참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싶었어요.
산딸기의 절반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버렸지만, 저에게 벌써 몇 가지나 창조해 주었습니다. 산딸기로 잼을 만드는 경험을 하게 했고, 아침마다 햇빛을 쬐면서 열매를 따는 재미를 알게 했습니다. 시내에서 유리병과 꽃병을 사게 했고, 선물을 만드는 행복과 꽃을 장식하는 기쁨을 알게 했습니다. 게다가 내가 만든 딸기 콩포트가 할아버지와 우정을 나누는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 저 산딸기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24/6/21/@MK
(+) 24/6/23일, 샤론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lotus6948/223488917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