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되어서야 통합되었던 것들
안녕, 나의 비싼 고양이 샤론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 오는 7월의 첫 번째 일요일 입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우선, 우리와 무사 워크숍을 함께 했던 다정님과 함께 나흘간을 인제에서 보냈어요. 떡 만드는 일을 하는 다정님이기에 하추리의 풍성한 잡곡과 농사 이야기, 자연의 풍경들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마침 몸에 대해서도 공부하시는 중이었기 때문에 생식을 준비해오셨어요. 제게도 곡식으로 만든 생식 한 포 나누어 주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엠케이. 씨앗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 있대요. 그리고 특히, 겨울을 지나지 않고는 완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계절 모든 것을 다 거치고 탄생한 것이 씨앗이래요. 그래서 그걸 섭취했을 때 내 몸에서 지금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채워주는 거래요.'
아, 겨울을 지나지 않고는 완전할 수 없다니. 겨울은 너무 춥고 횡량하다고, 아무런 수확이 없는 시기라고, 그래서 견디고 버텨야 하는 힘든 계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완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새삼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시련도 마찬가지의 의미인지도 모르겠어요. 완전한 내가 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시간들.
샤론에게 편지를 쓰다보니 문득 그대 없이 인제에서 홀로 지냈던 첫 번째 순간이 떠오릅니다. 겨우 나흘간이었지만- 인제에 온 뒤 샤론과 처음으로 떨어져 있을 때 였어요. 그 때도 월말이었고, 우리는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지요. 때 마침 민박집 숙소는 정화조 공사로 인해 마당이 전부 파헤쳐져 있었고, 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어요. 순간 좌절했어요. '아, 괜히 왔나? 나 혼자...'
물이 나오지 않아서 당연히 불편할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안주인 내외분들과 아침 저녁으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살뜰하게 챙겨주시던 소박한 백반과 저녁마다 주인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덜컹거리면서 시내의 식당으로 식사 하러가던 정겨운 시간들. 아마도 그 때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와 간식을 나눠 먹을만큼 마음이 열리게 된 것이. 그렇게 동네에 조금 더 스며들게 된 것이.
그 분들은 연신 제게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아니요, 그 시기는 오히려 제가 사랑 안에서 보살핌 받은 시간들이었어요. 그 때의 저는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서울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눈 깜빡할 새에 다시 인제로 돌아오는 길. 500km의 왕복을 반복하면서 계절은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진입하고 있었지만, 제 마음의 에너지는 겨울을 향해가고 있을 때였어요. '난 대체 여기 와서 무얼 경험하려고 하는 걸까? 무얼 해내려고 이러고 있는거지?' 차갑고 딱딱한 의문만이 빙하처럼 떠오르던 그 시간. 정화조 공사로 인해 단수가 되면서 저는 오히려 마음이 채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샤론이 없어서 아주 그리워 하면서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눈 앞에 안 보이면 그리운 고양이처럼 샤론의 눈웃음이 아른 아른, 제 사랑이 깊어진 것도 이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
씨앗처럼 품어지던 5월 마지막 주, 제 안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랑에 마음 안에서 뿌리 하나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이번 주말에 만난 새로운 인연- 활- 과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활은 이런 말을 했어요.
일단은 이것 저것 다 해보는 거야. 경험의 총량이 어떤 분기점을 넘어서야 그 때서야 무언가가 만들어지거든. 그래야만 선택하고 조합하고 탄생 시킬 수 있어. 그런데 분기점을 넘기 전까지의 모든 경험은 불안하고 확신이 서질 않아. 불완전한거지. 그런데, 모든 경험은 불완전 할 수 밖에 없어. 그냥 그걸 받아들여야 해.
저번 주까지만 해도, 7월 말에 있는 볼로냐 그림책 워크숍에 도전하기 위해 무슨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할지 영 불안했어요. <잘 할 수 있을 지, 해낼 수 있을지, 했다가 잘 안 된다면 어찌해야 할지...> 하지만 어딘가에 물어보고 의존하려던 제 마음은, 어느 덧 바뀌어 있었습니다. 토요일에 자문을 구하러 간 작가님에게 오히려 제가 함께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자고 스케치북을 선물했거든요. 그것은 아주 큰 의미였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창조에 대한 해답은 저만이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누구에게 물어본다 해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오직 저만이 알고 있거든요.
이제 나는 도움을 구하고 조언에 매달리는 걸인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볼로냐 그림책에 대한 도전도 내 안의 역할과 의미가 달라졌어요. 제 안의 경험의 총량에 물 한바가지 더 붓기 위해서. 성공과 실패의 유무를 떠나 확실한 그 총량을 위해서- 내 안의 것을 길어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샤론, 내 마음의 주인으로 우뚝 선 엠케이가 여기 있어요.
그대의 작은 천사가 이렇게 씩씩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우리, 어서 만나서 포옹해요. 주인된 마음으로.
24/7/7/@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