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는MK Jul 12. 2024

지구와 나 사이에 사랑이 있었어요.

공생의 존재로 살아가야 할 때



샤론. 지금 저는 만해 마을에 와 있습니다. 이번 주는 지언님과 함께 하고 있어요. 삶의 흐름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5월에는 샤론과 단 둘이 하추리에 적응하느라 온 마음을 다 했고, 6월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고 새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더니, 7월이 되니까 이 곳에 사람들을 초대하며 안내하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저는 점점 제가 하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의 역할로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썩 괜찮은 느낌입니다. 아니, 오히려 편안하고 즐거워요. 이런 제 자신인채로 맞이하는 삶의 순간들이, 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앞 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하는 것이 이제는 두렵지 않아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창조되는 순간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끝내주'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구나. 이게 살아있는 맛이구나!' 그런 매일을 살고 있어요.



어제는 김호진 해설사님을 만나 인제의 또 다른 얼굴을 보고 왔습니다. '살구미' 마을의 고봉골에 다녀왔어요. 숲길을 올라가면서 바위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초록 이끼들을 보았습니다. 그 때, 해설사님이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여러분, 이걸 한 번 자세히 보시겠어요? 그 말에 가까이서 들여다보니까, 정말로 이끼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모양이 있었어요.


"이건 '지의류'예요. 땅 지 地자에 옷 의 衣 자를 쓰거든요. 한 마디로 지구가 입는 옷인거예요."


땅이 입는 옷, 지구복이라니. 지의류는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의 보도블럭 사이, 나무 껍질, 담벼락에도 있대요. 생각해보니까 집 근처를 산책할 때 이런 지의류들을 분명히 본 적이 있었어요. 지구의 6%가 지의류로 덮여있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혹은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 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다가, 우리가 밟고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상의 곳곳에 존재한 것이,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니!'


지의류가 바위를 분해하면, 그것을 영양분으로 이끼류가 자라나고, 그로 인해 다른 식물들도 자라난대요. 한 마디로 지의류로부터 생명이 자라나는 토양이 태어나는 것이었어요. 와, 이걸 사랑이 아니고서야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Learn how to see. Realize that everything connects to everything else."  

보는 방법을 배우세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지의류는 두 가지 이상의 미생물이 뒤섞여 하나의 몸을 이루게 된대요. 혼자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조류와 곰팡이 없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공생체인 거예요. 그러나 나약하게 기대기만 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게하는 제일 첫 번째 역할을 하는 존재. 곰팡이와 조류가 함께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면 지의류라는 생명도 없었을 것이고, 지의류로 인해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저도 저 하나이고만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줘서 내게 무슨 득이 있을까? 주면 손해가 아닐까? 하는 판단 조차도 내려놓고 그저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세상을 향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의 경험들이 나라는 사람의 삶을 이루고, 그리하여 내가 남긴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토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에 겨우 1mm 도 채 자라지 못하는 지의류이지만, 소리 없이 계속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었던 것 처럼, 제 존재가 1년에 겨우 1 mm 만 자라더라도 소리없이 계속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의 세상을 향한, 정말이지 작고 사소한 사랑부터, 그렇게 말이예요.

 


PS.1: 지의류를 보고 감탄하고, 이끼에 마데카솔의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게 탐방을 했지만... 결국 그 이끼에 미끄러져 계곡 바위에서 넘어져 휴대폰을 첨벙! 빠뜨린 사고가 벌어졌어요. 이틀 전 샤론의 휴대폰이 '뻑' 하고 고장난 것 처럼 말이지요. 이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덕분에 저는 휴대폰 없이 생활하고 있는데요. 동영상 및 사진 촬영을 하지 않게 되니까 기분이 무척이나 이상합니다. 찍을 것이 없으니까 보여줄 것이 없고,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창조하게 될까요? 흥미 진진합니다.

 

PS.2: 지언님과도 후진항에 왔어요. 바다에게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고마워, 내 소원을 들어줘서.'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지금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바다에 첨벙 첨벙 돌도 던지고, 모래에 이름도 쓰고, 같이 만다라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바다에 돌을 던져 파동을 만들고, 썼다가 지워지는 허무한 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세상에 계속 무언가를 남기고 반응을 바라봤습니다. 지언님은 집에 데려갈 예쁜 조개와 돌을 찾았어요. 모래 사장을 오랜 시간동안 섬세하게 바라보았고, 그 속에서 마모된 유리 조각이 보석을 닮았다며 줏어왔습니다. 너무 작고 투명해서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들을 발견했어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우리 둘 사이에 지의류가 바닷물 사이에서 출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24/7/12/@MK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의 주인은 오직 나 이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