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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Jan 28. 2020

미국에서 보내는 첫 설날

사골 떡국 만들기 대장정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설날이 지나갔다. 지난 금요일 남편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했고, 딱히 설날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는 설날 특선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또 이제 막 시댁이나 친정으로 여정을 떠나는 친구들의 카톡을 보면서 실감했다. 설날이구나.


내가 있는 미국 지역과 한국과의 시차는 약 15시간 정도이다. 밤낮이 바뀌는 시간으로 한국에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때론 좀 번거롭고 특히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여전히 헷갈린다. 아직 초보 새댁이지만 친정에 하는 안부전화는 가볍게, 반면에 시댁에 하는 전화는 조건에 맞춰야 한다. 전화는 멀리서도 더 엄격한 법이다.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서 시간에 딱 맞춰서 전화해야 한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서 기다렸다가 연락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로 조카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따뜻한 국물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랜만에 들을 수 있는 여러 가족들의 목소리와 안부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서운함과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시댁과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명절마다 (마치 어떤 필수 코스인 것처럼) 남편과의 의견 다툼은 늘 있었고, 여느 부부들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날이 또 명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약간은 '이제 자유다.'- 라는 마음도 있었다.


지난 추석 때 만 해도 자유를 잘 누렸던 것 같다. 사실 뭘 하고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냥 평범하게 넘겼었다. 그런데 설날은 왠지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데 떡국은 꼭 먹어야 할 것 같고, 분위기를 좀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떡국을 준비하면서 요리라고 하기 어려운 몇 가지 반찬들을 만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 시댁에서 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기억이 왜곡되긴 했다. 그때만 해도 10명 넘는 어른들이 먹어야 하는 상을 차렸다 치웠다 다시 차렸다 치웠다 하면서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라는 회의감에 눈물 훔쳤으면서 말이다.


그랬는데 여전히 그런 기억뿐인데도 그리운 마음이 드는 것이 타향살이는 타향살이 인가보다.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공유받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무척이나 커지는 순간이었다. 설날은.


그래서 남편과 나의 조촐한 설날을 위해서 사골 떡국에 도전해보았다. 어떤 음식이 정성이 가득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남편에게 생색내기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어느새 사골 앞에 섰다. 사실 아직 만두는 자신이 없어서 시판용 만두를 샀다. 내년에는 만두에도 도전해볼 수 있길 기대하면서-!


사골 떡국 요 녀석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어렵고 오래 걸리고, 왜- 내가 이걸 시작했을까 이런 생각들의 돌림노래를 부를 때쯤 얼추 완성이 됐다. 끓인 양에 비해 국물이 너무 적은 것도 너무 고생한 탓에 무슨 맛인지, 근데 맛있는 맛이라는 생각으로 완성 후 설날 점심 한 끼를 맛있게 먹었다.


떡국을 먹으며 한국 예능을 보니 제법 설날 분위기가 났다. 이렇게 설날을 보낼 수도 있구나 기분이 묘했다. 남편에게 양가 부모님을 못 만나는 건 너무 아쉽지만 우리가 서로 결혼해서 '너와 나 가족'이 되었으니 다시없을지도 모르는 우리끼리의 오붓한 설날도 좋은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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