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오리 이원익 대감
서울에 비교적 근접한 광명동 일대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니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꽤 한적한 전원 지대의 풍경이 이어진다. 광명시의 많은 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진 장점 중 하나가 어느 도시를 가던지 그 도시를 대표할 만한 명산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구에 불과한 크기를 지닌 광명이지만 광명동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더라도 도덕산, 구름산 자락이 연이어 펼쳐진다. 그 자락의 초입에는 흡사 돔구장과 비슷한 자태를 지닌 국내 최대의 경륜장 스피돔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 헬멧을 본떠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고, 10,863석의 관람석, 최대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세계 최대의 돔경륜장이다. 목감천변에 있기에 자전거를 통해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륜 경기 자체가 베팅을 걸고 하는 도박적인 요소도 갖추고 해서 기피 시설로 분류된다.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주민들의 문화시설, 레포츠 시설을 잘 갖췄다고 하는데 현재는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 시설들은 잠시 멈춤 상태다. 그래도 주변은 활짝 꽃이 피어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것만이라도 괜찮은 장소일지 모른다.
밤일 음식문화거리를 거쳐 구름산 터널을 지나니 꽤 번화한 도회지인 소하동 일대가 나타난다. 이때부터 도로 이름과 가게 상호 등에서 '오리'라는 지명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이 동네가 오리고기가 유명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이 곳이 오리 이원익의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어느 주택가와 다를 것 없는 골목에 큰 규모의 한옥과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가 인상적인 장소가 광명에 남아 있다.
▲ 담장너머로 바라보는 충현박물관의 전경 우리나라의 유일한 종갓집 박물관인 충현박물관은 평범한 주택가 속에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의 고즈넉한 느낌과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시간여행을 온 듯 하다.
400년 가까이 세월의 흐름을 버텨내었던 그 종갓집은 이제 박물관으로 바뀌어 일반인들도 쉽게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의 품격을 누릴 수 있다. 단, 약간의 고민을 하게 하는 관문(?)이 있다. 박물관 치고 조금은 비싼 입장료가 걸린다. 과연 1만 원이란 거금을 내고 이곳에 들어가야 할까? 괜히 비싼 돈을 주고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루에 2, 3번 하는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 시간에 맞춰서 입장하기로 하고 들어가기 전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충현박물관 주변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기와담장이 박물관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건물의 높이가 꽤 있어 보였다. 게다가 적어도 몇 백 년의 나이가 된 듯한 울창한 고목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구쳐 있었다. 평범한 주택가에 이런 고택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사실 자체에 경외감마저 들게 만든다. 대동법, 청백리 정도의 단편적인 텍스트만 가지고 있는 오리 이원익 선생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 들어가려고 한다.
이원익 선생은 본관이 전주로 태종의 12번째 아들인 익령군의 4대손이라고 한다.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며 전쟁, 반정 등의 격변기에도 꿋꿋이 자기 위치를 잘 지켜냈다.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란 뒤에는 전쟁복구와 민생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시켰다.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로 유명했고, 인조로부터 궤장과 집을 하사 받았다고 전해진다. 충현박물관 경내에 있는 관감당이 왕이 하사한 집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답사가 기대된다.
이제 역사의 문을 통과해서 이 종갓집의 비밀을 파헤치러 가 본다. 충현박물관의 경내는 왼쪽부터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충현관과 최근까지 후손들이 거주했었던 종가와 인조 임금이 하사했다는 관감당과 뒤쪽의 사당인 오리 영우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우선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종갓집 어른이 빨랫돌 수집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 주위에는 수많은 수집품들이 빽빽이 탑을 쌓을 정도로 보관되어 있었다. 충현박물관 자체가 자체 설립된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원익 선생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거라고 하니 입장료가 비싼 게 이해되었다. 이원익 선생은 조선 중기 굵직한 역사 중심에 항상 서 있었다. 임진왜란은 물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의 국난이 닥칠 때마다 재상으로서 역할을 다 하였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항정심을 유지했다. 그러기에 죽어서도 그 소중한 유품들이 잘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초상화와 그가 남긴 글씨는 물론 인조가 내렸던 어제 현판까지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제기류이다. 사기와 놋그릇은 물론 심지어 스테인리스 도금 유기그릇까지 볼 수 있었다. 갓 시집 온 13대 종부가 유기그릇을 닦아 사용하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대고모님이 동대문에 나가 직접 사 온 그릇이라고 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굵직한 양반집 안도 시대의 흐름을 나름 유연하게 발휘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스테인리스 그릇들 뿌리깊은 종갓집도 기존의 전통을 계속 고집하기 보단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존의 유기그릇을 닦느라 힘든 새식구를 위해 동대문에 가서 직접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왔다고 한다.
이제 바로 옆에 있는 종갓집으로 건너가 본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개화기 한옥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창풍지 대신 유리로 문을 새로 내었고, 증기 시설을 설치해 놓은 뭔가 독특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다. 아무래도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생활을 편리하게 하다 보니 그런 시설을 설치한 듯한데 한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박물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후손들이 여기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현재도 집안 곳곳에는 그들이 썼던 생활용품들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 종갓집 사랑채의 풍경 후손들이 최근까지 살고 있었던 종갓집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편리하게 변화된 모습이 남아있다. 유리문과 증기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드디어 종갓집 박물관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관감당 영역으로 넘어간다. 특히 울창하고 나이가 족히 수백 년을 먹음직한 향백나무가 건물의 품격을 더해주었다. 관감당 건물 자체도 좋은 터에 자리 잡으니 굳이 사전 지식이 없어도 보석 같은 건물이란 느낌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원래 이원익 선생은 벼슬길에서 물러나 비가 새는 소박한 초가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인조가 그 소식을 듣고 경기 감사로 하여금 새 집을 짓게 해서 지금의 관감당이 탄생했다고 한다.
관감당은 '보고 느끼는 집'이란 뜻처럼 신하와 백성 모두가 이원익의 청렴한 삶을 본받자는 의미일 것이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방을 두었는데, 건물에 걸터앉아 이원익이 말년을 보내면서 가졌던 회한과 생각들을 헤아려 본다.
▲ 인조가 하사했던 관감당의 모습 청백리로 사셨던 이원익 선생이 안타까웠던 인조가 직접 하사한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원익 대감이 말년까지 이집에서 보내다가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바로 앞에는 이원익이 생전에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알려진 탄금 암이란 바위가 남아있었다. 내친김에 뒤편의 오리 영우까지 올라가서 그분의 초상화를 다시금 영접한다. 이원익의 초상화는 장년, 말년의 모습이 각각 남아있는데, 이원익이 안주목사로 재직할 당시 고읍을 잘 다스려 임기가 끝난 후 안주 백성들이 사당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사당을 세우는 것은 정말 파격적인 일로 백성들이 얼마나 이원익 대감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이원익은 백성들이 사당을 세우고 공물을 바칠까 염려하여 사당을 철거하고 대신 초상화는 가져가서 집안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 오리 영우에 모셔진 이원익 대감의 초상화 이원익 대감의 초상화는 장년, 말년의 모습 두가지 버전이 있다. 하지만 장년에 겪었던 일화로 인해 장년의 초상화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분의 정신은 후손에게 이어져 와서 1908년 광명시 최초의 교육기관인 운양의숙을 설립 하였고, 지금의 서면초등학교도 건립함은 물론 훌륭한 박물관 개관으로 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광명시는 물론 경기도, 문화재청에 이르는 수많은 관련 기관들도 함께 신경을 써주었음 하는 바람을 전하며 다음 장소를 향해 길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