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의 중심지는 어디인가?
"이번 역은 광명, 광명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오른쪽입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고속철도 광명역 덕분에 인지도는 그리 나쁘지 않다.
나한테도 광명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긴 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분이 광명에 살았는데 그분은 광명에 산다고 하지 않고, 서울이라고 항상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 금천, 구로구와 광명은 도로와 조그마한 하천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생활권이 밀접해 있는, 사실상 같은 동네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기묘한 도시에는 남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원래 광명 일대는 지금의 수도권 서남부 일대를 대부분 차지한 시흥군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무한 확장으로 인하여 시흥군의 원래 중심지인 영등포와 구로, 금천구가 떨어져 나갔고(시흥동이 예전 시흥군의 행정중심이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에 따라 지금의 광명시가지가 개발되면서 조만간 서울로의 편입을 기대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서울 집중 현상이 뜨거운 화제로 세간에 오르내리자 서울 집중 억제의 일환으로 광명은 서울 편입에서 배제되고, 남부의 소하읍과 묶어서 1981년 광명시로 시 승격이 된 것이다.
그 당시 광명시 주민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심지어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광명이라는 지명 자체도 광명의 일부 동네인 광명동에서 따온 것으로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지명이라 하기엔 존재감이 부족했었다.
전형적인 서울의 배드타운에다가 서울과 같은 지역번호 02까지 공유하니 광명 사람들도 사는 도시를 물어보면 자신들은 서울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광명이었지만 2004년에 고속철도역이 생기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광명이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한 광명역 광명의 역사는 고속철도 개통전과 후로 나누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속철도 광명역이 개통된 이후 광명역 주변으로 이케아와 코스트코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동굴 관광지
대한민국의 교통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은 ktx는 광명역을 지나가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광명이란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되었고, 광명역 주변에 신시가지를 개발하게 되면서 광명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광명역 주위에는 코스트코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케아가 들어오게 되었고, 서울은 물론 안양, 군포, 안산 등지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대거 광명으로 몰렸다. 거기에 더해 광명에는 남부럽지 않은 관광지가 하나 있다. 바로 광명동굴이다.
광명동굴은 가학산 중턱에 위치한 폐광산으로 남아있다가 2011년 관광지로 새롭게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동굴 관광지라는 장점을 살렸다. 이제는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1회성 관광지가 아닌 지속적으로 찾게 만들기 위해 해마다 다양한 시설을 보강하고, 개방구간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다른 동굴보다 앤터테인트먼트적인 요소가 가득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잡은 광명동굴 전에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었던 광명이지만 폐광산으로 버려져 있었던 광명동굴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전국에서 유명한 관광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광명시 자체가 생겨난 지 이제 수십 년 밖에 안됐지만,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광명 역시 역사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다. 청백리의 대명사이자 대동법을 시행했던 오리 이원익 대감의 종갓집이 바로 광명시 소하동 주택가 한 자리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종갓집이 박물관으로 공개되는 곳은 오직 이원익 대감의 저택인 충현박물관 밖에 없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지면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 국내 유일의 종갓집 박물관 충현박물관 대동법으로 유명한 오리 이원익 대감이 살던 종갓집을 후손들이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유일의 종갓집 박물관으로 오픈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명시의 중심축을 관통하는 나지막한 3개의 산을 가볍게 트래킹 하며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산에서 출발하여 밤일마을로 내려와 가볍게 식사를 즐긴 뒤 구름산, 가학산을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높이도 200미터 대의 산들이라 높진 않지만 울창한 숲과 자연으로 하나 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광명에 굵직한 명소들이 꽤 있지만 우선 가야 할 곳은 수도권 서남부의 최대 재래시장이 위치한 광명동이다.
서울하고 제일 근접하면서, 현재도 광명에서 가장 번화한 도회지라고 할 수 있다. 광명이란 도시 이름 자체도 광명동의 옛 이름인 굉메 마을에서 온 것이니 광명동을 오지 않으면 광명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광명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와서 안양천을 건너오는 방법과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광명사거리역에서 내리는 루트도 있다. 나는 그 루트 대신 고척동으로 가서 조그만 하천인 목감천을 건너며 광명 답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얼핏 보면 특색이 없는 평범한 번화가와 다를 바가 없는 광명동에는 광명을 넘어 수도권을 대표할 수 있는 국내 7번째 규모의 재래시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주차장도 구비하고 있어서 자차가 있는 관광객도 편안하게 시장을 둘러볼 수 있다.
1970년 광명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함께 생겨난 광명 전통시장은 80년대 당시 주변 의류 상권과 가구점, 먹자골목, 금융기관, 병원 등이 광명사거리 주변의 광명 2~4동에 걸쳐 위치해 있어서 광명시의 대부분의 의식주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 수도권 서남부의 최대 재래시장 광명전통시장 광명은 물론 수도권 서남부의 최대규모의 재래시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방문한다. 잡화는 물론 먹거리도 무척 풍부한 시장으로 유명하다.
칼제비, 냉면, 클로렐라 햄버거... 여기가 천국이네
지금도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시장 전체에 아케이드 설치해,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고도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이정표와 쉼터는 물론이고 품목, 가게 종류별로 구획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광명 전통시장의 입구에 쓰인 "전통시장의 자부심"이란 문구처럼 규모는 물론이고 볼거리도 무척 풍성했다. 우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을 부치는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한다. 녹두빈대떡, 해물파전 등 여러 가지 전들이 고소한 냄새와 커다란 크기로 나를 유혹하지만 좀 더 시장을 둘러보며 결정을 미루기로 한다.
수산물, 과일, 잡화 등 광명 전통시장에는 살 거리도 유독 많아 보이지만 나의 눈길을 끄게 되는 건 아무래도 먹거리다. 광명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모이는 이유도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면서 김밥 한 줄과 튀김을 사게 되고, 닭강정도 어느새 한 손에 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광명시장에는 그래도 명성이 전국적으로 퍼진 유명한 가게가 몇 군데 있다.
우선 칼제비와 손칼국수를 단돈 3500원에 먹을 수 있는 홍두깨 칼국수집을 놓칠 순 없다. 양은 물론이고, 국수의 진한 멸치육수가 강하게 나의 입맛을 돋우게 만들어 준다.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이 남김없이 비어진다. 이럴 땐 다시 시장으로 나와 한동안 물건 구경을 천천히 산보하듯이 하면서 배를 소화시키면 된다. 다음으로 가볼 시장 맛집은 광명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맛집으로 유명한 뚱보 냉면이다. 평양냉면 같은 심심한 맛이 아니라 시장 사람들처럼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푸짐한 냉면이다. 김밥이랑 같이 먹으면 그 맛이 더욱 배가 된다.
시장의 맛집들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똑같은 맛이라도 새롭게 느껴진다. 시장을 나오는 길에 광명시장의 명물 클로렐라 햄버거를 포장해서 먹어보기로 한다. 광명 여행의 첫 스타트를 나름 괜찮게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광명의 속살을 파헤치러 떠나보자.
▲ 광명시장을 대표하는 맛집 광명시장에는 많은 먹거리가 있다. 전집, 치킨, 떡볶이 등 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뚱보냉면이 상당한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