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서울의 과밀해진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1980년대 1기 신도시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 신도시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일산, 분당 신도시부터 부천의 중동, 군포의 산본, 그리고 이번 안양 여행의 답사 처인 평촌 신도시까지 있었다.
일산, 분당이란 이름은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흔히 들어봤지만 평촌이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긴 하다. 다른 1기 신도시들이 대체적으로 도시와 궤적을 달리하면서 그 도시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안양시청이 평촌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고, 안양이라는 도시를 크게 변화시킨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의 큰 축을 담당한다.
안양의 구도심이라 할 수 있는 만안구를 지나 평촌 지역인 동안구로 들어오니 계획도시답게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구획도 반듯하게 조성되었음이 느껴진다. 신도시의 선임 격이라 아파트들은 다소 낡아 보였지만 고루하거나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는다. 평촌신도시의 핵심 동네인 평촌, 범계동은 안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자 가장 빨리 변화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보이고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모르는 동네에 수준 높은 예술 작품들이 길거리와 아파트 단지, 상가, 공공기관 앞 어디에나 있다. 일상을 예술로 끌어들인 이 도시의 속살이 궁금해서 지나칠 수 없었다.
우선 평촌신도시의 중심축에 자리 잡은 평촌 중앙공원으로 첫 발을 디뎠다. 안양시청에서 시작해서 평촌 중앙공원으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을 포함해 공원 안팎에 50여 점의 조각품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공원의 거대한 광장으로 나아가면 울창한 숲에서 벗어나 사방이 뚫려있는 시원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 평촌 중앙공원에서 바라보는 평촌신도시 1기 신도시 계획 중 하나인 평촌신도시는 도시구획이 반듯하게 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평촌 중앙공원이 있고, 안양시청과 일직선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예술작품들이 공원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그 중심에는 평촌 중앙공원의 상징적 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서 있고 그 너머 쌍둥이 오피스텔 빌딩인 아크로 타워와 안양시청까지 직선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산책을 하거나 연을 날리거나 피크닉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훌륭한 공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평촌 주민으로서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 공원, 도로변, 아파트 단지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들을 찾아보는 보물 찾기의 여정으로 떠나보도록 하자.
▲ 평촌 중앙공원의 명물 티하우스 태국 작가 티라바니트의 작품인 티하우스는 다실에 영감을 얻어 기울어져 있는 독특한 건물로 제작했다. 평촌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SNS상에서도 꽤 유명하다.
먼저 살펴볼 곳은 한옥을 45도 정도로 기울여서 위태로운 형태로 건축한 일명 티하우스라고 하는 태국 작가 티 라바 니트의 작품이다. 얼핏 보면 공중에 떠 있는 집이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자세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작가는 평소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왔고, 그런 맥락에서 전시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관람객에게 제공하거나 전시장을 아파트로 바꾸기도 하는 등 독특한 활동을 많이 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이탈리아에서도 스테인리스 재질로 정육면체 모양의 티하우스를 제작했다고 한다. 명상의 담소의 공간인 다실을 불안한 건축으로 마무리지었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분명 훌륭한 작품임에 분명하건만 안양시민들은 이런 광경에 익숙한 듯 무심코 지나가는 모습이 더욱 신기하게 다가왔다. 다음으로 볼 작품은 역시 중앙공원 내에 자리한 시간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이다. 세계 각국의 시간을 표시하는 지구 위에 한 사람의 인물을 세우고 한국의 시간을 표시한 시계로 얼굴을 가려놓은 기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 시계는 우리를 속박하는 중요한 매개체인 상황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예술은 우리 인생에서 필수품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압축적으로 혹은 명쾌하게 보여주며 인생을 고찰하게 해주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삶의 소재를 예술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됨을 보니 나의 작은 세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밖에도 범계역 부근의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강아지와 꽃이 인상적인 <헬로, 안양 위드 러브>>라는 작품과 430개의 거울을 엇갈리게 쌓아놓은 10미터의 탑인 <루킹 타워>도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평촌의 예술작품이다.
안양 APAP 홈페이지나 안양파빌리온 등을 찾아가면 평촌신도시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을 수 있다. 거리두기 상황이 좋아지면 안양 예술공원, 평촌신도시에 산재해 있는 작품들의 설명을 듣는 투어 프로그램도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오랜 시간 동안 평촌의 작품들을 두발로 직접 걸어 다니며 찾으러 다녔더니 배에 허기가 진다. 음식점을 찾느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범계, 평촌역 일대에는 일명 로데오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수많은 술집과 음식점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범계역 2번 출구부터 아크로타워 쪽으로 뻗은 '평촌 1번가 문화의 거리'는 500미터가 채 안 되는 길이지만 테마별로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상가건물이 빽빽하다. 허기짐을 해결하고 나왔더니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평촌 로데오 거리 지하철 4호선 범계역에서 아크로 타워 방면으로 이어지는 로데오 거리는 평촌신도시 뿐만 아니라 안양 최대의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리이다. 백화점을 비롯해 안양시청이 근방에 자리하고 있다.
즐거웠던 안양 여행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안양은 서울의 일개 구정도 크기밖에 되질 않지만 안양을 둘러싸고 있는 명산이 유난히 많기로 유명하다. 우선 군포와 맞닿아 있는 동네에는 경기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이 있다. 수리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병목안 시민공원이라는 안양시민들 사이에서 캠핑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장소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수리산 성지도 존재한다.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수리산 골짜기 병목안으로 들어와 신앙촌을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안양의 수리산 자락에는 많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녹아들어 가 있다. 또한 서울과의 경계에 자리한 관악산과 삼성산을 빼놓을 순 없다. 관악산 자락에는 관악산을 순환할 수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 탐방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인데 안양시 구간은 석수역에서 시작해 금강사, 안양 예술공원, 망해암, 비봉 산책길을 지나 관악산 삼림욕장, 간촌 약수터를 통해 과천 구간으로 연결된다. 이렇듯 안양에는 자연을 즐길 만한 장소가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산자락에는 유서 깊은 사찰들이 아직까지 남아 안양의 역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선 소개할 곳은 삼막사라 하는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입구의 삼막마을 먹거리촌과 삼막사 계곡의 명성도 대단하지만 삼막사 계곡의 끝 자락에 위치한 삼막사는 역사가 신라시대 문무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애삼존불, 삼층석탑, 사적비 등 절이 자랑하는 다양한 석조물과 유명한 남녀 근석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안양에 있는 수많은 절 중에서 한 군데만 가야 한다면 안양의 일몰을 보러 망해암으로 무조건 향해야 한다. 망해암은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정조대왕의 모친인 해경궁 홍씨가 중건했다고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의 망해암인 만큼 맑은 날이면 서해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 망해암의 풍경 안양 9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망해암은 안양시내에서 차로 쉽게 오를 수 있으며 특히 일몰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망해암으로 올라가 안양 도심을 내려다보며 안양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안양 여행에서 많은 수확을 거둔 것 같다. 경기도의 도시들도 방향성을 잘 잡고, 그 특성과 잠재력을 이용한다면 당당한 하나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 도시에서는 어떤 매력을 살펴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