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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Shin Jul 07. 2017

A급, 세션이 되어라  27

작곡, 그  10만 시간의 법칙

1968년 뜨거운 여름,

작가는 화전을 하며 살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4년을 금산의 골짜기 인삼 농사 부락에서 살았다  

6.25 전쟁에 환멸을 느끼신 아버지는 20세가 되기 전 천기를 읽는 명천을 하셨고 스스로 

'백운'으로 제자를 양성하며 산속에 사셨는데,

70년대 초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며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화전을 하던 부락
산속의 화전 부락

9명의 대가족서울 빈민으로 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집 없는 설움과 배고픔이었다

6살 때에는 가난으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뒤 새로 오시는 새어머니 또한

얼마들 못 살고 떠나셨는데 그 수가 무려 11세 때까지 9번이었다

70년대 에는 고향을 떠나온 재혼녀를 소개시켜 주는 곳이 있어서 때로는 그분들 신분이 

불분명하여 3일 만에 집안의 돈을 챙겨 도망가는 이도 있었고 대가족 뒷바라지가 힘들어 

몇 달 만에 말도 없이 훌쩍 떠나거나 하였다

두 얼굴의 계모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이유도 없이 모르게 때리는 계모들도 물론 존재했었다

형제 모두 배가 다른 대가족잦은 이사와 많은 이혼으로 인해 전학을 11번이나

다니며 동네 텃세에 어린데도 패싸움한 아픈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늘 무언가 음악 공책에 음표를 그리고 노래를 불렀던

추억이 있는데 아마 교육되지 않은 작곡의 영감이 의붓형제와 계모들의 괴로핌 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최종학력 국민학교 졸업

1979년 겨울,

백운 도사 가족들은 흐리고 눈이 내려 저기압이 된 강화도의 새로 구성된 지 얼마 안 되는 

마을에서 전원 연탄가스로 인한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천기누설 운운하며 신문에도 오르 내렸지만 너무도 쉽게 잊혀 갔고,

새로 지은 집의 은행 빚과 장례 빚에 생존자 한 명은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가보지 못한 채 

단 이틀 만에 이웃들의 도움으로 장례는 치러지고 경찰관 손에 이끌려 소년은 서울역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부랑 소년들과 함께 신문보급차에 실려 

구로동 어느 지부로 가게 되었다

한 4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침낭 같은 것에 숨어들어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개미들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이   최초의 집이었다

새벽부터 7시까지는 배달을 해야 했고 출근길에는 남은 신문을 모두 팔아야 했다

오후에는 각 가정집들을 돌며 수금을 하며 때로는 새로운 집들을 개척하는 일들이 

신문팔이 소년의 하루 일과 이었다

작곡을 배운 첫 직장
극장식 클럽 무대

작가가 13세,

2년간의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제대로 된 5배 임금의 첫 직장,

당시 최고 극장식 클럽 "초원의 집" 연예인 대기실 헬파로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16인조 팝오케스트라에게 출연 가수 악보를 미리 

보면대에 정리해 놓는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심부름 같은 것이었다.

조용필과 이주일을 당시 아주 유명했던 사랑과 평화도 매일 볼 수 있어 좋았다

최고 실력 있는 연주자 16인조가 기본 팝오케스트라로 모든 반주를 라이브

하고 있었는데,

첫 스승 이판근 연주자
당대의 이론가

그분들 중 베이스 하시는 분이 바로 재즈 1세대로 당대의 이론가이며 재즈 화성학

거성이신 "이판근" 선생이었다.

작가가 어려도 클럽에서 생활하며 음악도 좋아하고 꽤 부지런하고 움직임이 좋아

보였는지 어느 날, 아버지의 미소를 하시며 오래된 일본 책을 한 권을 소개해 주시며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오랫동안 읽어보라며 독학을 권하시는데 그 책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재즈 화성학"이었다.

유학 1호 지휘자 정성조

그리고, 클럽에서의 숙식은 계속되었고 초저녁 간단한 미드 나이트 무대에 서며

3년 동안 열심히 음악 이론과 피아노와 기타를 배우는 즐거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16인조 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이셨던 '정성조'선생께서는 어느 날 작가를 불러

세워놓고 아주 낡고 큼직한 팝송책 한 권을 툭 하니 던져  주시며,

"야 너 이거 그대로 그릴 수 있겠냐?" "어느 곡을 베껴 올까요?"

"마 똑같이 한 번 다 그려 와봐~" ""

지금도 그렇지만 새로운 교본을 얻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행복 그 자체다

그렇게 세상의 명곡을 베끼기 시작하였다

명곡을 사보 하다
악보 그리는 연습 

작가는 오후 5시 청소와 문 닫고 아침에 잠들기 전 일하는 틈틈이 음악 공책에다가

아는 노래부터 정성껏 사보를 하기 시작 하였고 처음에는 하루 한 곡도 힘들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요령과 방법을 터득하자 모르는 노래들도 쉽게 사보가 되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떠밀리듯 즐겁게  업소 생활과 병행하면서 어느덧,

1년이 되지 않아 미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책 800곡 한 권을 모두

그대로 베끼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철없이 악단원들에게 자랑도 하고 미련하지만 참 꿈같던 10대 시절이었다

수학적 음악 공식을 보다

작가는 그때 어두운 조명 아래서 오랜 시간 악보 그리는 것을 반복하다 무언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멜로디와 가사 사랑받는 명곡들만의 수학적인 법칙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전체 악보만 보고도  의도된 어느 정도 그 음악을 상상하며 편곡을 해낼 수 있게 

되었으며 반대로 첨 듣는 음악은 전체 악보와 함께 녹음실의 전문 세팅이 떠오르기도 한다.

명곡을 청음으로 채보하다

그리고  당시 다른 외국 뮤지션들처럼 보고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듣고 직접 나만의 채보 

악보를 그려내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어려운 그것,

도무지 청음이란 기타 파트에게는 좌절과 희망의 상징일 것 같다

60,70년대 TOP 40 음악은 거의 대부분 기타를 치지 않고 멜로디를 직접 찾아 그렸지만,

2옥타브를 넘기는 솔로는 초보자로서 한계를 분명 느끼게 해주는 어려운 과정 이었다

한번 어렵게 찾아낸 코드나 멜로디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귓가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

후천적인 코드 청음

음악을 하려면 완벽한 청음이 필요한데 두 가지 정도의 기본적인 훈련으로 작곡의 기본기를 

완성해 낼 수 있겠다

타고난 청음은 = 절대 음정이고 작곡을 하려면  = 코드 청음이 필요한데

이건 상대적 청음으로서 타고나지 않아도 오랜 수련으로도 다가갈 수 있는 뮤지션의 노력의 

경지이며 중요한 기본이다 청음이 되는 재즈 뮤지션은 노래나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따라 할 수 있으며 남녀 12 키 마음대로 즉흥으로 바꿔 솔로로 내 놓을 수 있으며 상대방 

연주자가 흥에 겨워 변조하더라도 즉흥 잼이 가능하다.

부족한 1만 시간의 법칙
법칙이란 없다 

매일 연주를 해야 하는 뮤지션의 하루 시간을 내어 작곡도 해야 하는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작곡가의 험난한 길, 1만 시간(5년 남짓) 가지고는 부족하다

어차피 평생 완성해 나가야 할 꿈이라면 내 인생에 들어온 음악을 꿈의 주파수로 들을 것이냐?

꿈의 코드로 들을 것이냐? 이것이 뮤지션으로서  꿈꾸던 작곡가의 평생을 가늠할 기본자세라 

하겠다  일만 시간의 법칙?

성공의 비결이라 미리 정해 놓지 말고 하루 10시간씩 10대부터 꾸준히 40대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인생의 끝자락에선 누구나 좋은 작곡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 평생토록 믿고 있다

꿈은,  결국 시간이 데려다주는 현실 속.

꿈은 결국 시간이 데려다주는 곳
정직한 모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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