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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대마초

한국과 캐나다, 두 나라에서 느껴지는 약물에 대한 온도차

밴쿠버가 자리 잡고 있는 캐나다 BC(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세계에 몇 안 되는 유흥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지역 중의 하나다. 19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길거리에 있는 dispensary (대마초를 파는 약국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에 가서 손쉽게 대마를 살 수 있고, 당연히 피우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밴쿠버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쑥뜸을 태우는 것도 같기도 하고, 한약방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약간 달달하기도 한 대마초 태우는 냄새와 자주 마주치게 된다.


매년 밴쿠버에서 열리는 420 (대마를 칭하는 은어) 페스티벌. 사람들이 피워올리는 대마연기로 공기가 뿌열 지경이다.


한국에서 대마초는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마약류'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마 흡연으로 구속된 수많은 연예인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밴쿠버에 도착한 한국은 이런 자유분방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마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백주대낮에 저렇게 길거리에서 대놓고 마약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다들 말세라고 혀를 쯧쯧 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몇 달간 대마를 피우는 사람들을 이웃 삼아 살아본 결과 생각했던 것만큼 대마초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연기를 맡았을 때 기분이 덜 나쁘다는 점이 가장 긍정적인 점이다. 한국에서 아파트 생활을 할 때는 아랫집과 옆집의 담배연기 때문이 기분이 나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특히나 아침에 창문을 통해 스멀스멀 우리 집에 들어오는 담배연기는 하루 기분을 잡치는 불쾌한 존재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옆집 아랫집 모두 가끔씩 대마를 피우는 것 같은 연기가 올라올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담배연기만큼 불쾌한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독성 물질이 덜 함유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대마초는 확실히 다른 약물들에 비해 위험도가 적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대마의 유해성이 타 약물들에 비해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술이나 담배가 훨씬 높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땅콩 알레르기로 사망하는 사람은 있지만, 대마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없으니 대마는 땅콩보다 안전하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마초의 유해성은 장기적으로 검증된 부분은 아니니 흘려들어야 할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아직 많은 논란이 있지만 캐나다 정부는 결국 대마초를 오락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올 7월에 통과시켰다. (링크) 이게 과연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대마초의 중독성과 의존성은 의외로 오히려 알콜이나 니코틴(담배) 보다 낮다.


이렇게 대마 사용에는 관대한 캐나다지만, 한국에서는 되고 캐나다에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공공장소에서 술 마시기. 한국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어서 "그게 불법이라고?"라는 의문을 제기할 법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건 캐나다에서 적발 시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는 일이다. 한강변에서 친구들과 바깥바람을 쐬며 기분 좋게 맥주 한 잔씩을 하던 추억이 남아있는 한국인들로서는, 공원에서 바비큐를 하면서도 맥주 한 잔 할 수 없는 캐나다 법이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캐나다의 야박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BC주의 음주단속 법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74조 1항 : 술 또는 약물에 취한 사람은 공공장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74조 2항 : 경찰관은 공공장소에서 술 또는 약물에 취해 있는 이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이렇게 체포되면 최대 $115불의 벌금을 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대학 개강총회 시즌이나, 금요일 밤에 번화가를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술에 만취한 사람들이 캐나다에서는 찾아보기 아주 힘들다. 설사 누군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전화만 한 번 하면 바로 경찰이 달려올 것이다. 본인이 절제를 못 할 정도로 술에 취하는 건 본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닌 게 아니라, 알코올은 가장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약물 중에 하나다. 반면 대마는 사람을 흥분 시키보다 진정시키기 때문에 이로 인한 폭력 사태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흔히 강한 마약이라고 부르는 헤로인이나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보다 술에 취했을 때 본인과 주변에 더 해를 끼칠 확률이 높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던 차량 때문에 한 가족이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생각해봐도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폭행하거나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람이 무겁게 처벌받았다는 사례보다도,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고 술에 취해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인정받아 감형된 사례가 더 많이 떠오를 정도로 한국은 술에 대해 관대한 나라다. 술을 마신 후 서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술에 취해서 저지른 행위를 '실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애초에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단속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 아닐까?


술과 대마라는 두 약물을 두고 두 나라가 어떤 식으로 다르게 대처하는 지를 지켜보면 왠지 각각의 나라가 어떤 철학으로 법이 설계하는지 알 것만 같다.


- 술을 마시든 대마를 피든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두되, 남에게 피해를 줄 때엔 일벌백계한다. (캐나다)

-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에는 관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엄벌한다. (한국)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어떤 쪽에 더 마음이 끌리실지 궁금하다.


외국에 나와 살며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는 이렇게 평생을 한국에 살면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그렇게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법도 도덕도 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족을 남기자면, 이 글은 한국에서의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글이 아니며 한국인은 대마초 흡연이 허용되는 나라에서 흡연을 했더라도 속인주의에 의해 한국 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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