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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남들이 들으면 번듯하게 잘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 싶을 것 같기도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몇 년 전부터 카카오라는 제법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내 인생이 "별 일 없어졌다"라는 기분이 들기 생각했다. 시답잖은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그렇다고 사는 것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즐거운 일은 있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큰 회사를 다니면서 시스템의 일부로 일하는 이상 내가 남은 일생동안 일을 안 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일은 없겠구나.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그만큼 큰 보상을 기대할 일은 없겠구나. 이렇게 잔잔한 일생을 살게 되겠구나.


해외 이민이라는 큰 인생의 결정을 1년 전에 내렸지만 회사 생활이 주는 익숙함이라는 것은 놀랄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어쩌면 회사란 단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이런 구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으니까) 어느 순간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너무 편안하다. 그게 안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덕분에 갓 태어난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서도 가끔씩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기 전 내 꿈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시무시한 집념과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뛰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생이란,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보이는 어떤 목표를 위해서 그저 끝없이 달리는 것이구나 싶었다. <위플래시>나 <달과 6펜스> 같은 이야기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막상 느낀 것은, 나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 선배에게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선배의 대답은 뛰어난 아이들을 모아서 교육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재단에 5천억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그 돈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리고 그 선배는 실제로 그 꿈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거창한 꿈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그냥 하루하루 회사 가서 돈 벌고 월급 타고, 여자 친구랑 (지금은 와이프가 되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좋아하는 꽃 사주면 행복했다.


7개월 된 아기가 있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틈도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그 질문이 가끔씩 돌아온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랑 와이프가 행복하면 행복하다. 그런 것 말고 별 특별한 생각이 없다. 누군가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로또 당첨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매일매일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중압감 없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게 꿈이라고. 그런데 누군가 지금 나에게 그 돈을 주면서 "그럼 이제 해보고 싶은 일을 하러 가 보도록 해!"라고 한다면 내가 내일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사는 것 말고도 정말 내가 하면서 행복한 일은 뭘까? 사실 나는 지금 별로 그런 게 없다.


회사를 열심히 다녀서 연봉을 많이 올리면 언젠가 일을 안 해도 되겠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연봉 몇백만 원 차이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던 때도 있었다. 근데 요즘은 연봉 4천이나 1억이나 낼 모래 회사 안 나가면 끼니 걱정해야 하는 건 똑같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다녀서 은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뭐 가능하긴 하겠지. 여름이가 결혼할 때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미디어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스테레오 타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지 않을까? 최근에 감명 깊게 보았던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라는 동영상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며 리스크와 보상의 균형을 잘 맞추는 방법을 아는 것은 최고의 삶을 사는 데 있어 필수적 조건입니다. 여러분께 다음의 선택이 주어진다고 가정해봅시다. 현재 그 자리에 계속 그대로 안주하는 안전 하지만 지루한 삶과 환상적이지만 험난한 정글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삶.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선택입니다."


어쩌면 난 스스로를 두 번째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첫 번째 타입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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