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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외노자, 시애틀 외노자 되다

한국을 떠나서 밴쿠버에 1년 반 가까이 머물렀다. 첫 팀이었던 Peopletech (HR)은 일단 사람들이 좋고, 많이 높지 않은 업무 강도 덕분에 외국 생활에 처음 적응하기엔 참 좋은 팀이었지만 팀에 1년 넘게 머무르고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한국에서 해왔던 일과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용하는 언어나 프레임웍은 익숙했지만 카카오에서 쌓았던 경험은 이곳에서 전혀 쓸모가 없었다. 짧은 경력 동안 그나마 어느 정도 선을 이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그저 아는 것을 사용해가면서 일한다는 느낌이었다. 


여기서의 경험이 내 커리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모두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마존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 때문에 그 속도에서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들 - 아마존은 하루에 300명이 넘는 직원을 뽑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루에 몇 개의 인터뷰가 필요할까? - 이 쌓이고 있고, 그래서 내가 채용이라는 도메인에 관심이 있었다면 분명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채용 시스템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소프트웨어보다는 사람을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이런 거대한 흐름을 내가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 작년에 우리가 론칭했던 자동화 기능이 얼마나 많은 역풍을 맞았는지 생각해 보면 - 무엇보다 이게 내 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부터 잡 서칭을 시작했다. 아마존은 누구나 입사 첫날부터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고, 어떤 팀이 어떤 사람을 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내부 채용 포탈에 모두 공개되어있다. 나는 1년간 아마존 캐나다에 일하면서 L1 비자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기 때문에 근무 지역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가지고 있는 팀들 - 카카오에서 했던 머신 러닝과 데이터 엔지니어링 - 이 어디 있는 지를 중점으로 살펴봤다. 그렇게 3개 정도의 팀을 꾸려내서 그 팀 매니저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참. 아마존은 내부 채용도 인터뷰를 본다. 팀마다 기준이 다르고 외부 인력을 뽑는 것처럼 정석적으로 힘들게 면대면 인터뷰를 하진 않지만, 그래도 팀마다 최소 2~3명 정도와는 잡담(을 빙자한 경력 캐묻기(?))와 간단한 코딩 문제 풀이 정도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면접 봤던 팀 중에 미니멈은 2개. 맥시멈은 4개. "아니 내부 채용인데 무슨 면접씩이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팀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 아마존은 모든 것이 팀 바이 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도 분위기도 시스템도 각자 다르다 -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면접을 꼼꼼하게 본다는 것은 그들도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렇게 처음 인터뷰를 본 팀은 시애틀 AWS에 있는 팀이었다. AWS의 메인 프로덕트는 아니지만 AWS 전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터벌 프로덕트를 만드는 팀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고 했다. 머신 러닝을 직접 프로덕션에서 돌리고 있는 팀은 아니어서 완벽한 핏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오퍼는 받아놓으면 좋으니까,라고 생각해서 인터뷰를 보기로 했는데 무려 4시간 동안 4명의 인터뷰어와 인터뷰를 봤다. 영어로 인터뷰를 본 경험이야 있지만 대면을 하지 않고 전화로만 기술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떠들려니 쉽지 않았다. 세 번째 세션이었나, 코딩 문제를 푸는데 답은 냈는데 time complexity가 잘 안 줄어서 10분간 끙끙대고 있다가 인터뷰어가 답을 알려줬는데 그때 조금 징조가 안 좋음을 느꼈다. 별 대단한 것도 아니고 변수 트릭인데 그냥 알려주지... 치사하다. 여하튼 첫째 팀은 탈락. 됐어 나도 너네랑 일 안 해. 


두 번째 팀은 Personalization이라는 조직에 있는 팀이었다. 인터뷰 봤던 팀들 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맘에 들었는데 우선 팀에 applied scientist가 있고, 실제로 머신 러닝 모델을 프로덕션에서 돌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매니저와 이야기가 잘 통했다. 매니저 이름이 한국 이름이라서 혹시나 해서 이민 2세라고. (하지만 모든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다...) 기술면접도 잘 봤고, 카카오에서 Spark job 하나 최적화하려고 온갖 애를 쓰며 삽질했던 이야기를 해 줬더니 무척 재밌어했다. 인터뷰 끝나고 나서 느낌이 좋았고 오퍼를 받았다.


세 번째 팀은 이제 어딘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면접 봤던 게 3월이라... 죄송합니다...) 여기도 기술 면접 잘 통과하고, 매니저가 엄청 적극적으로 너 이 팀에 와라. 너 오면 내가 1~2년 내로 시니어 승진시켜줄 프로젝트 있다. 이러면서 영업했는데 나는 사실 2번 팀이 맘에 들었고 전체 엔지니어들 중에 10% 정도도 안 되는 시니어 엔지니어를 달아준다고 그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이 뭔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본디 성격이 이룰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렇게 2번 팀으로 가기로 했다. 팀을 옮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다른 모든 것들이 힘들었다. 1년 반 동안 즐겁게 지냈던 팀 동료들에게 팀을 옮기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일 - 다행인 것은 이미 우리 팀의 절반이 다른 팀으로 가 있거나 갈 예정이었기에 많이 미안하지는 않았다;;, 비자 인터뷰를 위한 끝도 없는 서류 작업들과 잡일들,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여름이를 데리고 짐을 정리하고, 또 가서 어떤 집에 머무를지 고민하고, 밴쿠버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회사에서 이삿짐과 도착 후 머무를 숙소, 이사하는 동안 머무를 호텔을 알아봐 주었기에 망정이지 이 많은 일들을 다 내가 혼자 해야 했다면 그냥 안 가고 말았을 듯.


그렇게 떠나기로 결정하니 밴쿠버가 참 새로워 보였다. 왜 좋은 것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한 것을 느끼는지. 길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서든 쉽사리 들려오는 한국말과, 맛있는 아시아 식당들, 차가 없이 그냥 걸어서도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조그만 다운타운이 왜 이렇게 그리워질 거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맨날 어디 가서 밴쿠버 완전 시골이라고 하고 다니고 그랬는데 도시로 옮기고 나서야 시골에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밴쿠버가 좋은데 왜 시애틀로 갔느냐. 


첫 번째는 연봉. 캐나다에서도 적은 연봉은 아니었지만 시애틀로 옮기면서 물가 차이를 고려해 약 30% 정도 연봉이 인상되었다. 그리고 미국 워싱턴 주의 세율은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세율에 비해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나의 경우 10% 정도가 낮았다. 30% 정도 연봉이 올랐는데 10% 세금이 낮아졌으면 얼마가 올랐을까요? 정답은 각자 계산해보시는 것으로... 계산하실 때는 물가가 올라서 지출도 많아졌다는 사실도 고려해주세요..


두 번째는 커리어 기회다. 가능하면 밴쿠버에 머무르고 싶었던 맘도 없지 않았지만, 아마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팀들은 모두 시애틀 아니면 베이 에어리어에 있었고, 대기업이라고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밖에 없었던 밴쿠버와는 달리 시애틀에는 페이스북과 구글을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있다. 물론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여하튼 그렇게 7월부터 시애틀로 이사를 해서 새로운 팀으로 출근하고 있다. 새 팀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Personalization이라는 말 그대로 아마존의 개인화 추천을 담당하는 팀이다. 올해 초에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이런 구절이 감명 깊었노라고 페이스북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쇼핑몰들이 이제는 기계학습을 통해 상품들을 유저들에게 추천하고 있지만 아마존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추천 시스템들을 컴퓨터 기반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수동으로 홈페이지에 편집자들이 책들을 배열하던 시스템이 컴퓨터를 통해 자동화가 되면서, 인간들이 내는 매출이 컴퓨터의 그것보다 작아지기 시작했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편집팀은 제품마다 멋진 글쓰기를 이용하고 권장 제품에 대해 직관적인 결정을 내리며 제품을 하나하나 다루었다(1999년 아마존 홈페이지에는 사자 모양의 어린이 책가방을 홍보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실었다. “우리는 사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귀여운 사자 가방과 함께라면 떨리는 학교 첫날도 용감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개별 맞춤화팀은 말장난을 다 빼버리고, 차갑고 확실한 데이터를 이용해 개별 고객을 위한 가상 가게를 지어 통계적으로 고객들이 가장 구매할 만한 제품으로 선반을 채웠다.

베조스는 어떤 팀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테스트 결과를 주시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P13N 사무실 벽에는 “사람들은 존 헨리가 결국에는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이것은 증기 기계와 땅파기 시합을 한 전설적 인물에 대한 내용이다. 존 헨리는 시합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 후 즉시 숨을 거두었다.

대부분의 편집자와 작가는 다른 부서로 전출되거나 정리 해고되었다. 루퍼스의 주인인 수전 벤슨은 안식휴가를 다녀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당시 멀티미디어 부사장이었던 제이슨 킬러가 그녀를 회의에 불러들였다. 그는 이메일에서 회의가 ‘편집팀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불길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편집팀을 해체해 자동화된 세계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저의 임기는 끝났다는 것을 알았죠.” 벤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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