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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내리지 않는 것도 선택

요즘 가끔 뵙고 있는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대희씨는 왜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싶으세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제가 정말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어서요."

"그럼 얼마정도가 있어야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이렇게 말해보죠. 대희씨가 예를 들어서 20년정도의 시간을 열심히 일해서 그런 자유에 도달했다고 치죠. 그러면 뭘 하고 싶을까요?"

"좀 쉬지 않을까요? 여행도 좀 하고..."

"20년 후에도 대희씨는 계속 열심히 일하고 싶어질거에요. 왜냐면 그게 대희씨가 과거 20년동안 살았던 인생이니까요. 사람은 20년동안 일하고 '자 이제 놀아야지'하면서 놀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20년간 일만 보면서 살았던 인생이 이제는 대희씨의 인생일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게 힘들꺼에요.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면 행복한 일을 하세요."


그러고 보면 나는 자주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며 살았던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다른 즐거움들을 생각 없이 포기하며 대학만 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병역특례를 하며 이직이 자유로워지는 신분이 되면 행복해질거라 생각하며 기다렸고, 회사에 다니면서는 해외 취업을 하면 행복해질거라는 생각을 하며 더 크고 좋은 회사에 가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나는 결국 대학 시절에는 왜 내가 이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몰라서 많은 시간들을 술을 마시고 놀면서 보냈고, 병역 특례를 한 뒤에도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몰라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고 3년을 다녔으며, 해외 취업을 한 뒤에는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에 정말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 맞는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나는 친구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과, 좋은 환경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시간과,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 볼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그냥 막연히 미래에 찾아올 파랑새만을 기다리면서. 그런데 사실은 그런 파랑새는 애초에 없었던 거다. 


나는 내가 과거에 보낸 시간의 결과일 뿐이고, 나의 미래 역시 지금 내가 보낸 시간의 결과가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의식적으로 그런 선택을 내렸던 것들은 아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는, '선택을 내리지 않는 것도 선택' 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뭘 하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하기 보다는 누군가 나에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행복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는 계속 다른 사람들의 목표를 나의 목표처럼 여기며 살아왔고, 그때문에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그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며 - 의식했던 의식하지 않았던 -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회사에 취직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을 게 아니라, 그냥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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