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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Nov 23. 2024

냉동식품이지만 괜찮아(?)

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8)

저는 요리를 잘 못 합니다. 음식과 맛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국이나 찌개가 없어도 밥을 잘 먹고, 

맛에 별로 민감하지 않아도 음식에 대한 평가는 딱 하나뿐입니다.


"먹을 만 해"


아내 입장에서는 편한 점도 있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해도 평소와 별로 반응이 다르지 않으니 

아마 맥이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제가 가끔 아주 드물게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줄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없는 날입니다. 





아내가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주말. 1년에 한, 두 번 정도밖에 없는 날입니다. 


이런 날은 괜히 아이들과 평소에 안 하던 무언가가 하고 싶어 집니다. 

아내가 잘 먹이지 않는 라면이나 짜파게티를 해먹이거나 아내가 잘 데리고 가지 않던 

조금 먼 곳에 있는 공원이나 산에 가기도 합니다. 


아니면...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어 하루 종일 실컷 핸드폰을 하게 내버려두거나 말이죠.

(미안해, 여보 ㅠㅠ) 


오늘도 아내가 외출을 한 틈을 타서 작은 아이를  위한 요리를 만들어봤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순간에 저의 선택은 간편 식품입니다. 

마트 냉동코너에서 모차렐라 치즈 돈가스를 사 왔습니다. 

평소에 둘째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이번에는 제 손으로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고기를 사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으로 준비해서 주면 더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솜씨가 아니네요^^


제품 뒷면에 있는 조리법을 꼼꼼히 읽어봅니다. 처음에는 이런 조리법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런 부담은 없습니다. 더구나 냉동식품이라 에어프라이에 잘 돌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런데.... 여기서 난관에 부딪혔네요.


에어프라이를 직접 다뤄본 적이 없습니다 ㅠㅠ

몇 번 만져본 적은 있는데 그건 매번 아내가 시킬 때였습니다.


"옆에 시간 버튼 보이지! 그거 눌러. 플러스 누르고 시간을 올려~"


이렇게 시키는 대로 누르기만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가 뭘 왜 눌렀는지 전혀 머리에 입력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물어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부딪혀보기로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내에게 에어프라이 사용법을 물어보면 그때부터 집안 걱정을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일단, 에어프라이의 전원을 켰습니다. 

기본 세팅 시간이 15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리법에는 18분 동안 돌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본 설정 온도도 조리법에 나와 있는 것과 우리 집 에어프라이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잠시 에어프라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버튼들을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테스트 삼아 만져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원하는 온도와 시간으로 작동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직관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다루기 쉬웠습니다. 이걸 왜 평소에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


에어프라이가 돌아가는 동안 밥을 차렸습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놓고 밥을 펐습니다. 

잘 익혀진 치즈 돈가스도 빈 접시에 올려서 반찬 옆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둘째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몬가... 예쁘게 차려주고 싶다. 식당에서 나오는 어린이세트처럼..."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곧바로 냉장고를 뒤졌습니다. 


아내가 씻어둔 샤인머스캣이 있었고 귤이 있었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사과즙이 있었습니다.

접시에 돈가스를 올리고, 밥을 동그랗게 다음 뒤 그릇 여백에 과일을 올렸습니다. 

양배추가 있었지만... 씻고 썰어서 올리자니 돈가스가 식어버릴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얘들아!! 밥 먹자!!"


둘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평소에 워낙 엄마 껌딱지인 아이라 제가 무얼 해주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식탁으로 온 둘째는 접시를 보더니


"우와! 아빠가 직접 만든 거야? 레스토랑 같다~~~"


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냉동 제품이라는 말은 못 하고 그저 웃고만 있었습니다. 

돈가스 맛을 본 둘째는


"퍼펙트!"


라며 엄지 척을 하고 밥을 계속 먹었습니다. 


양심에 좀 찔렸지만, 그냥 둘째의 사랑을 듬뿍 느끼고 싶어서 직접 만든  척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먹는 모습만 봐도 정말 배가 부른 기분이었고, 

특히,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는 둘째에게 칭찬을 받으니 흐뭇했습니다. 

요리를 하는 즐거움이 이런 것인 모양입니다. 


한 참 밥을 먹던 둘째는 배부르다며 웃어 보이고는 다시 한번 


"정말 퍼펙트했어!"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행복이 별거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먹다가 제 바로 옆에 있는 첫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째는 맨밥에 물을 말아서 먹고 있었습니다. 첫 째는 돈가스를 싫어해서 미역국을 주었는데 어쩐지 미역국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물어보았더니


"미역국이 갑자기 안 먹고 싶어서. 나 그래도 밥 다 먹었어"


하더니 정말 밥에 찬물을 말아서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거실로 갔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아차 싶었습니다. 첫째는 샘이 많아서 평소에도 제가 둘째를 쓰다 듬기만 해도 질투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라도 해줄걸 그랬다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ㅠㅠ


첫째의 마음은 어찌 달래줘야 할까요... 

저녁 한 끼 먹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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