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4)
회사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회사 행사나 회의 같은 사진들입니다.
그렇다고 전공자나 전문가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보니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 좀 당황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진도 아니고, 회사 보도자료에도 실리고, 소식지나 SNS에도 올라갈 사진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런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습니다.
더구나 기계 다루는 것에 영 서툰 저로서는 카메라를 배운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했던 시절의 저였기에, 거절을 못하고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전 사진 찍을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죠."
라고 했으면 될 일이지만, 회사에서 어디 그런 말이 쉬운 가요.
그 당시가 파스텔톤 보정이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보정이란 단어조차 생소할 때라 사진을 잘 찍으면 저절로 그런 톤이 나오는 줄 알고 열심히 끙끙거렸습니다. 당연히 촬영만으로 될 리가 없었고 회사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였죠.
그런데... 이렇게 싫어하던 카메라를 꾸역꾸역 1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하면 프로라던데... 제가 프로는 아닌 것 같네요.
아~ 저희 회사 행사를 기준으로, 저희 회사 직원들만 대상으로 생각하면 제가 좀 찍는 것 같긴 하네요^^
매일같이 사장님이나 높은 분들 사진만 찍고 보정하고 있다 보면 가끔 현타도 옵니다.
그럴 때면 가끔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섭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을 찍는 것은 아닙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도 찍어보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노는 모습도 찍어 봅니다.
노을도 찍고, 이런저런 풍경들을 찍습니다.
그렇게 사진 산책을 하고 있으면 가슴 한 켠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사진을 계속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나와 세상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것저것 정신 사납던 삶에서 벗어나 조용히 그리고 온전히 지금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중년의 텅 빈 가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여태껏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행복'입니다.
제가, 제 스스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다니요.
정말 10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회사가 억지로 시켜서, 업무용으로 시작한 일이었고 정말 하기 싫었었는데 말이죠.
이제는 저에게 처음 사진 업무를 시켰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 회사보다 사진의 비중은 더 크죠.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사진으로 월급을 받고 밥을 먹고 있는 저를 생각하면 세상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청춘의 20대 때 저는 늘 진로가 고민이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이라도 꾹 참고 해야 할지, 배고프고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할지 말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고민이 다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묵묵히 꾸준히 공부하며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라면 하기 싫은 일도 언젠가는 할 만해지고
그 일을 언제 싫어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진 찍는 것이 참 좋습니다.
업무용 사진을 위해 윗분들에게 질질 끌려서 행사장에 나가서 높은 분 사진을 찍고 있어도 즐겁습니다.
물론~ 여전히 힘들고 그만하고 싶고 지칠 때는 있습니다. 그래도 해보니 즐거움이 느껴지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약간의 미화도 되었지만,
저의 지금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물론... 저보다 더 사진을 잘 찍고 글을 잘 쓰고 그걸로 더 많은 돈을 버는 분들도 있겠지만,
굳이 비교하지만 않으면 저는 저를 보며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연말이라 회사에 행사가 너무 많아요. 너무 바빠서 요즘 눈 많이 왔는데도 아이들이랑 눈 사진도 못 찍었네요ㅠㅠ 이번 주말엔 동네 풍경이라도 꼭 찍어 보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