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일기 1. 코로나 시대에 방콕을 그리워하며
코로나 시대에 방콕을 그리워하며
이제 내겐 두어 번의 방콕과 역시 두어 번의 대만, 그리고 일곱 번의 일본 여행일기가 남아있다. 하지만 현재 시국상 그리고 나의 감정상 일본 일기는 올리고 싶지 않다. 고로 남은 건 대만과 방콕 일기뿐인데 자주 가던 곳이다 보니 늘 같은 일기가 되는 것 같아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올해 4월 치앙마이와 7월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와 그곳들의 일기를 먼저 올린 후 느긋하게, 이전 일기들과 텀을 두고 올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의 여행 일정들은 전부 취소되었다. 고로 나는 다시 지난 방콕에서의 일기를 열었다. 비록 같은 곳을 갔을지라도 함께한 사람들과 함께한 이야기가 다르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또 지금은 가기 어려운 방콕을 그리워하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토요일 늦은 저녁 비행기였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계속되는 민원 때문인지 몇 개월 새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의 시간표가 또 바뀌어있어 그냥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갈 때보다 더 이른 시간이 길을 나서야 했지만 그래도 이게 더 마음이 편했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공항에 도착해 겨울 외투를 맡기고, 나보다도 먼저 공항에 와있던 I를 만났다.
HD님까지 합류, 비행기를 타기 전 밥을 먹어두면 좋을 것 같아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타기 전후에 시간만 허락된다면 필수 루틴인 비비고에서 밥을 먹자. 언제나처럼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먹고 비교적 한산한 게이트에서 출국 심사를 받았다. 면세 물품을 찾고 또 면세점을 둘러보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 시간에 넘게 연착되었다는데 과연 방콕에는 언제 도착할까.
방금 밥을 먹고 탔는데도 기내 메뉴판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그래서 난생처음 기내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사 먹었다. 무려 만천 원이나 주고 파절이까지 들어있는 고기를 먹었다.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도시락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먹어서 그런가 맛있었다. 도시락을 비우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뒤에서 하도 쳐대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고 그 이후로는 잠들지 못했다. 몇 번의 비행을 제외하고 내 비행은 늘 이렇다. 왜 항상 내 뒤에는 의자를 툭툭 쳐대는 인간들만 앉는 걸까. 쳐댐이 너무 심해 나도 팔꿈치로 내 의자를 세게 내려쳤다. 그 이후 내 뒷자리 남자는 얌전히 비행했다. 진작 이럴걸. 진작 나도 세게 내려칠걸.
잠에서 깬 나는 핸드폰을 뒤적이다 창밖을 보기 시작했다. 내내 어둠만 보이다 어느샌가 구름이 보이고 별이 보였다. 그리고 비행기의 날개가 보였다. 다시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별 수 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별이 보이고 비행기의 날개가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행기 아래로 구름 대신 불빛이 보였다. 이제 곧 비행기가 착륙하겠다는 방송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 비행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입국 심사 줄도 평소보다 더 길었다. 방콕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콕의 입국 심사 줄이 그 어느 나라의 줄보다 길고 지친다고 했을 때 단 한 번도 공감하지 못했으나 이번만은 깊이 공감했다. 내 옆에 친구들이 있어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으나 긴 비행 뒤라 그런가 피곤하기는 했다. 그러나 입국 심사관이 심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웃어주며 인사하는 것을 보곤 피곤이 조금 사라졌다. 그의 웃음이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이라 인사해주는 것 같아 다시금 여행의 설렘이 생겨났다. 내가 다시 또 방콕에 왔어!
캐리어를 찾고 3번과 4번 게이트 사이에서 픽업 회사를 찾았다. 내 이름을 찾고 바우처의 번호를 알려주었더니 15분만 기다리란다. 캐리어의 털썩 앉아 픽업 기사님을 기다렸다. 의자 없을 때 의자 대신 쓰려고 하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거야. 체감으로는 15분보다 더 오래 기다려 기사님을 만나 호텔로 왔다. 드디어!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직원이 캐리어를 옮겨다 주었다. 오, 이런 서비스! 룸 컨디션은 이전에 묵었던 <틴트 오브 블루>보다 좋지 않았다. 조식까지 주는데 틴트 오브 블루보다 저렴해서 좋아했으나 딱 그 값을 했다. 틴트 오브 블루는 셋이서 한 방에 묵을 수 없고 두 개의 방을 예약해야 했기에 셋이서 묵을 수 있는 방을 찾다가 이 호텔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예약했었다. 찾아본 몇 후기도 나쁘지 않은 데다 수영장은 좋기까지 해서 기대했는데 룸 컨디션이 애매하다. 이름을 몇 번 바꾸었을 정도로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시설들도 노후되었고 소파는 너무나도 낡아 살짝 치면 먼지가 풀풀 날릴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수영장은 가보지 않았으니 모든 기대를 버리기엔 이르다.
새벽 4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으나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시차를 생각하면 더 오래 깨어있었다.)
조식 메뉴도 룸 컨디션처럼 애매했다. 아무래도 이전 호텔인 <틴트 오브 블루>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모로 그곳이 더 좋았다. 기대했던 수영장은 벌써부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수영장은 조식 시간보다도 더 이른 시간 혹은 모두가 놀러 나가고 비어있을 점심 즈음 이용하는 게 좋겠다. 조식 시간의 수영장은 누군가의 후기처럼 '식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롱잔치'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첫날이니까 툭툭을 타고 나가는 대신 걸어서 길을 익히기로 했다. 이전 호텔보다 좋은 점은 아속/수쿰빗역과 더 가깝다는 것! 유명 호텔에 비하면 거리가 꽤 되지만 걷기에 무리 없다. 골목만 더 예뻤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 툭툭도 더 자주 다니니 역에서 오가는 건 무리 없겠다.
여행의 시작은
짜뚜짝에서부터
짜뚜짝은 주말에 크게 열리는 시장인지라 운이 나쁘면 여행 끝에서야 갈 수 있는데 우리는 첫날부터 짜뚜짝에 갈 수 있었다. 우리처럼 여행의 시작이 주말이라면 짜뚜짝 시장을 가장 먼저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 같은 경우 여행지에서 (특히나 그곳이 동남아일 경우) 코끼리 옷이라던가 현지의 특징이 잘 드러내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편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었을 때 그곳에 더 잘 동화되는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이번 여행도 역시 짜뚜짝에서 시작했다. BTS 역에서 내려 고개를 돌리면 짜뚜짝 공원이 보이는데 그 순간의 설렘은 표현이 어렵다.
짜뚜짝 공원에 들어서 이 모습을 보아야 비로소 내가 방콕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비록 나는 이 나무 위를 빠르게 돌아다니는 팔뚝만 한 쥐를 봐서 잔디 위에 앉아 쉬진 못하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짜뚜짝에 들어서면 입구에 과일을 잔뜩 썰어둔 채 판매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각자 땡모반과 시원한 얼음물을 샀다. 어느샌가 이 곳에서 땡모반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루틴이 된 것 같네.
방콕에는 딸랏롯파이도 있고 아시아티크도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짜뚜짝이다. 이곳이 가장 저렴하고 물품도 다양하다고들 한다. 물품이 다양한 것엔 동의하지만 가장 저렴하단 건 세모. 옷은 딸랏롯파이나 아시아티크가 더 싼 곳도 있더라. 하지만 그 외 기념품은 단연코 짜뚜짝이 가장 저렴하다. (내가 보고 산 것들 기준이다.)
나는 그간의 여행에서 사둔 옷이 있어 이번엔 그 어떤 옷도 사지 않았다. 대신 친구들의 조카를 위한 코끼리 옷과 선물을 잔뜩 샀다. 또 짜뚜짝에서만 판다는 태국판 프라이탁 '태라이탁' 가방도 샀다. 태국의 비료 포대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던데 프라이탁보다 훨씬 가벼웠고 패턴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이의 사진 속에서 보던 것만큼 종류가 많지는 않았으나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으니 괜찮다. (분명 이곳에서만 판다고 보았는데 후에 여행을 하며 이곳저곳에서 많이 봤다.)
쇼핑 전에는 짜뚜짝의 명물인 빠에야를 먹기로 했다. 빠에야보다는 빠에야 집의 아저씨가 명물이지. 그러나 한바탕 쇼핑을 하고 나니 너무나도 더워 빠에야 아저씨의 사진만 찍고 터미널21로 넘어가 시원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언제든 항상 나를 반겨주던 빠에야 아저씨가 없었다. 더워서 쉬러 간 건가? 너무 아쉬웠다.
모칫역에서 BTS를 타고 아속으로 돌아왔다. 터미널21의 <해브 어 지드>를 가기 위해.
방콕 여행에서 절대 빼놓지 않고 오는 해브 어 지드. 내가 좋아하는 쏨땀과 땡모반이 있고, 똠양꿍도 맛있다. 이번에는 팟타이도 시켰다. 팟타이는 <팁싸마이> 옆집의 것이 최고지만 어디서 먹든 맛있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여기에 각자 누들과 밥을 추가해서 먹었더니 배가 엄청 불렀다. 시원한 곳에서 편히 앉아 맛있는 것을 먹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
터미널21에 온 김에 고메마켓에서 미리 장을 봐 두기로 했다. 돈이 충분할 때 다 사두어야 해. 저녁에 먹을 샐러드와 (안주로 좋다) 맥주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려 했는데 오늘은 술을 판매하지 않는단다. 내가 올 때마다 늘 이러네. 그래도 다행인 게 오늘 하루만 판매하지 않는 거라 내일부터는 매일 저녁 호텔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고메마켓에서 양손 가득 먹거리와 스타벅스에서 산 음료수를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려 했지만! 이 시간이면 한산하겠지 하던 우리의 예상과 달리 수영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맞아 여긴 방콕이지. 방콕에는 호캉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걸 간과했다. 유유자적 사진도 찍으며 수영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게 분명해 수영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무념무상으로 아무것도 안 하며 쉬기로 했다.
적당히 쉬다가 이번에는 툭툭 시간에 맞추어 나왔다. 너무 더워서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었다. 여름과 걷는걸 그토록 좋아하는 나인데도 갑자기 맞이한 여름은 쉽지가 않은가 보다.
오후에는 <카오산로드> 옆에 있는 <람부트리로드>에 가려했으나 <딸랏롯파이2>로 일정을 바꾸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어디든 좋아서 아무 데나 골랐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람부트리로드보다 딸랏롯파이2로 가는 길이 편해서. 수쿰빗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번에는 MRT를 타고 움직였다. 타이컬처센터에서 내려야 하는데 이야기하고 핸드폰 하다 보니 허무하게 문이 닫혔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되돌아가야 했지만 바로 알아차린 덕에 한정거장밖에 더가지 않았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오늘도 핑크 방콕
전에는 시장을 먼저 둘러보고 옆 쇼핑센터 <ESPLANADE> 주차장에서 전경을 보았는데 이번엔 쇼핑센터 주차장에 먼저 올랐다. 호텔에서 쉬다 나온 덕에 딱 일몰 시간에 맞추었다. 다만 중국발 미세먼지가 태국까지 넘어와 예전과 같은 진한 분홍빛의 멋진 노을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웠다. 카메라로 담으면 어느 정도 분홍 노을이 보였으나 육안으로는 확연히 티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딸랏롯파이는 '핑크 방콕'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모든 천막에 불이 켜지는 걸 바라보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높은 곳에 있어서 인지 약하지만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또 이 순간을 잊지 못하겠구나. 이 풍경을 잊지 못하겠구나.
주차장에서 내려와 야시장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식당부터 찾았다. 일단 먹자!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홀리쉬림프>에 먼저 가보았는데 역시나 한국인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크게 먹고 싶던 메뉴도 아니라 줄을 보자마자 셋 다 뒤돌아 다른 곳을 찾았다. 이럴 때 마음이 맞는다는 게 참 좋다. 누구 하나 꼭 여기서 먹어야 한다고 하면 우린 꼼짝 못 하고 그 줄에 합류했겠지. 그것도 추억이 되긴 하겠지만.
눈앞에 펼쳐져있는 많은 펍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2층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에어컨은 없지만 분위기는 있으니까.
치킨과 쏨땀, 맥주와 콜라를 시켰다. 치킨은 비둘기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작았고 쏨땀은 매운맛이 강했으며 맥주 chang은 역시나 맛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두 테이블 밖에 없던 이층이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야시장을 둘러보며 수영복 위에 입을 로브를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는 로브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쇼핑센터도 둘러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로브를 걸친 채 바로 옆 식당에서 조식을 먹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말이지. 과연 이 여행에서 우리가 로브를 살 수 있을까.
야시장의 마무리로 초코 바나나 로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HD님이 먹고 싶어 하던 감자튀김과 I가 먹고 싶어 했던 콘파이를 샀다. 낮에 사두었던 샐러드와 함께 야식을 즐겼다. 내일을 위해 자자!
2019년 3월 17일
캐논 EOS 6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