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초 Aug 26. 2020

포기하는 만큼 분명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강백호, 서태웅도 아닌 정대만이었다. 정대만의 카리스마, 드라마 같은 인생, 3점 슛을 쏘는 슈팅 가드 포지션 등 캐릭터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래 나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는 그의 한 마디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남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취업준비에 한창일 때에도 나의 자기소개서에는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라는 지금 들으면 오글거리지만 그 당시에는 있어 보였던 문구들을 즐겨 썼다. 그리고 인사담당자에게 내가 얼마나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도전 정신을 갖고 있는지 어필했다. 이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순탄하게 최종 합격까지 할 수 있었다.


 입사 후에도 다행히 포기를 모르는 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일 중독까진 아니지만 일을 통해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며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무엇이든지 더 해보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으로 나를 인도해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현실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 한 달에 한 번뿐인 월급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뭔가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불안감과 매일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모습만 남아있었다. 


 또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은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완벽주의라는 것이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막상 시작하면 판을 짜는 것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직접 챙겨야 성에 차기 때문에 스스로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드는 저주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놓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생겼을 때 좌절감과 상실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이땐 왜 이렇게 밖에 못했을까?', '이걸 왜 못 봤지?' 등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괴롭혔다. 지금껏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포기를 모르고 완벽을 추구하는 내 모습이 어쩌면 스스로를 옭아매고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 지 문득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20대를 지나 30대가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후 포기를 조금씩 알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껏 포기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쉽게 포기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과 역경쯤은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허세를 부리며 보상받으려는 욕구가 있었다. 이러한 욕구가 한계를 뛰어넘어 더욱 훌륭한 성과를 선사할 때도 있었다. 성공한 만큼 실패하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문제는 실패를 회복하는 대가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비싸진다는 것이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온 힘을 쏟아 무작정 달렸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면 된다. 그러나 커리어가 쌓일수록 가진 것도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원점으로 복귀하는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그만큼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평범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루저가 된 기분이 들어 무리수를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포기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었을 때 주변의 시선과 보상을 인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즐겁다는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는 세로토닌 또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은근하고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 도파민은 어떤 보상을 기대하게 만들고 짜릿한 쾌감, 희열, 흥분을 느끼게 한다. 일을 할 때 도파민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게 만든다. 특히 경쟁에서 이기거나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여 무언가를 쟁취했을 때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 그러나 도파민은 보상을 기대하는 감정에서만 나오는 물질이라 보상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그럼 더 큰 자극과 빠른 변화로 계속적인 도파민 분비를 찾게 된다. 이것이 도파민의 함정이다. 그래서 도파민이 너무 없으면 무기력함에 빠지고 너무 많으면 중독이 될 수 있으니 도파민을 적절히 잘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항상 강조한다. 


 일을 하면서도 분명 즐거운 순간이 있을 것이다. 며칠간 밤을 새우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안서가 통과된다거나, 동기보다 빠르게 진급을 하거나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즐거움이 어떤 보상에 의한 즐거움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파민의 함정에 빠져 자극을 추구하면서 열광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직장에 갈아 넣어 즐거움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차가 쌓일수록 포기를 통해 도파민이 아닌 세로토닌이 분비될 수 있는 즐거움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무엇인 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언제든지 한 페이지 정도 빼곡하게 적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경력이 쌓인다는 것은 전문 분야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좋건 싫건 주변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 그 일에 대해 왜 잘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도 눈에 보일만한 성과가 없는 이상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즉, 전문 분야가 생길수록 직접 통제가 가능한 부분과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만족감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스스로를 망상 속에 빠트릴 수도 있다. 이는 종종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들기도 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곧 패배와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른 부분에 효율적으로 열정과 노력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만화 <슬램덩크>의 뒷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도 나이가 들어 언젠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죽을 때까지 포기를 모르는 남자로 살 순 없으니깐 말이다. 현실세계의 직장인은 우여곡절이 더 많기 때문에 더욱 포기를 모르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자 시기는 다르겠지만 어느 순간까지 비바람을 뚫고 달렸다면 잔잔한 순풍이 부는 곳에서 본인만의 페이스를 찾고 노련함을 발휘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06화 적극적인 자세가 오히려 일을 줄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