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역사 있는 아이템
* 이 글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웹 매거진 온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해 SBS 가요대전에서 뉴진스는 청량함과 풋풋함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뉴진스다운’ 공연을 선보였다. 당시 공연만큼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구두이면서 운동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신발이었다. 구두와 운동화가 결합한 ‘구둥화’ 디자인은 오묘함을 자아냈고, SNS에서 구매처를 문의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사실 ‘구둥화’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구두와 운동화가 결합한 디자인의 신발을 ‘구둥화’라고 불렀고, 이후 이와 유사한 신발의 디자인을 구둥화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구둥화는 밈으로 잠시 관심받았을 뿐, 새로운 패션 카테고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일반적인 구두보다 편안한 착화감을 찾는 직장인을 위한 신발이었다.
하지만 최근 구둥화는 젊은 층이 찾는 신발로 탈바꿈했다. 뉴진스가 신은 구둥화 브랜드 리매진(@remagine_studio)은 출시 2년 만에 MZ를 대표하는 국내외 셀럽이 애정하는 브랜드로 성장했고, 다른 브랜드에서도 젊은 층을 타깃으로 구둥화를 출시했다. 실제로 최근 1년 간 구둥화를 가장 많이 검색한 세대도 2030이다. 최근 구둥화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구둥화’라는 단어가 탄생하기 전부터 이름만 달랐을 뿐 이미 구둥화는 존재했다. ‘락포트(Rockport)’와 ‘알도(Aldo)’가 대표적인 예다. 락포트는 1990년에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토니 포스트가 락포트의 ‘드레스포츠 정장화’를 신고 뉴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하며 마라톤도 뛸 수 있는 구두로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락포트는 가성비와 착화감을 앞세운 기능성 신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알도 또한 비즈니스 캐주얼 신발을 강조하며 구두보다 편한 신발로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직장인의 옷차림이 캐주얼해지고 2019년에는 코로나19로 유연한 근무 환경이 도입되며 구두의 수요는 대폭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구두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했던 구둥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빈자리는 편안함과 개성을 추구하는 운동화가 대신 차지했다. 2021년 기준 전체 신발 시장 규모는 약 7조 원으로 운동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반면 구두 비중은 30%로 하락했다. 그 결과, 구두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던 락포트와 알도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최근 파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반면 럭셔리 업계는 2010년대 후반 어글리 슈즈의 열풍과 함께 크고 과감한 아웃솔과 미드솔이 특징인 구둥화를 전개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착용하기 어려운 과한 디자인과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큰 사랑을 받진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margiela)의 ‘에어백힐 더비’와 루이비통(@louisvuitton) ‘퓨전 더비’다. 구둥화는 그렇게 일상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사라질 줄 알았던 구둥화는 최근 젊은 층으로부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진화한 디자인이었다. 기존 구둥화는 어퍼는 구두, 솔은 운동화의 단순한 디자인으로 구두의 느낌이 더 강했다면 최근 등장한 구둥화는 구두보다는 운동화에 더 가까운 형태다. 지난 1월 준야 와타나베의 2024 F/W 파리 패션위크 맨즈 컬렉션에 등장한 ‘준야 와타나베 맨 x 뉴발란스 1906 로퍼’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