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초 Jul 15. 2024

무라카미 다카시가 오타쿠에게 미움받는 이유

예술? 비즈니스? 난 둘 다

* 이 글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웹 매거진 온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입니다.


도인처럼 길게 기른 머리, 덥수룩한 수염, 알록달록한 차림의 아티스트가 한 인터뷰에서 뉴진스 팬임을 밝히며 러브콜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 6월, 그는 뉴진스와 협업을 성사시키며 성덕(성공한 덕후)의 반열에 올랐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무라카미 다카시다. 칸예 웨스트, 빌리 아일리시, 블랙핑크 등 유명한 셀럽뿐만 아니라 루이비통, 슈프림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진행한 경험이 있는 그는 현재 가장 하이프한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기반으로 하위 예술과 상위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슈퍼플랫’으로 인기를 얻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인 화려한 색상에 해맑게 웃는 꽃은 수많은 카피가 탄생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은 편. 예술 업계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고 부르며 팝아트의 대표 작가로 평가하고 있지만, 의외로 오타쿠 사이의 평가는 ‘오타쿠 착취자’라 할 만큼 가혹하다.


오타쿠가 예술이 되는 순간

먼저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의 작품은 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피겨뿐만 아니라 직접 개발한 캐릭터까지. 다양한 오타쿠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되는 요소가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에 ‘오타쿠스러움’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작가는 왜 이렇게 오타쿠 이미지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무라카미 다카시는 ‘생존’을 말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인 아티스트로서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철저히 이방인이었던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존 서양 미술과 방식을 답습한다면 낯선 땅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이 필요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미국에 건너갔을 무렵인 90년대 중반, 마침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일본의 서브컬처인 오타쿠 문화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곳에 기회가 있는 법. 작가는 가장 일본적이면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서브컬처인 오타쿠 문화에 주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오타쿠 문화는 폐쇄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전제로 하기에,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에겐 낯설고 배타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라카미 다카시는 기존 오타쿠 문화에 내재된 의미와 맥락을 제외하고, 시각적 상징을 적극 활용했다. 오타쿠 문화의 높은 진입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나아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러한 방법론을 현대미술의 담론과 접목시켜 '슈퍼플랫' 이론을 정립했다. 하위 예술과 상위 예술의 경계를 초월하고자 한 이 이론은 미술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견고해 보였던 범주가 뒤섞이며 누군가에게 낯설면서도 반가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은 전시는 물론 브랜드 협업, 상품화 등 다방면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주목받게 되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오타쿠를 대표하나

무라카미 다카시는 오타쿠 문화를 소재로 활용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타쿠에겐 외면받았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오타쿠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타쿠 문화의 특징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작품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정보들을 공유하고 재생산한다. 즉, ‘오타쿠’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과 탐구 열정,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참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타쿠를 대표하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할 순 없다.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공로를 인정받고 구성원들에게 암묵적인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타쿠 커뮤니티에서 전혀 활동하지 않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오타쿠 문화의 가치를 외부에 알리며 주목받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문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뉴진스의 구둥화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