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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초 Jul 28. 2024

우리집 아파트는 펜디가 지었다

의식주를 점령한 패션 브랜드

* 이 글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웹 매거진 온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입니다.


침대, 옷장 같은 가구부터 식기류까지. 집안의 모든 집기가 럭셔리 브랜드로 도배된 곳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제 곧 한국에 상륙할 '펜디 까사(FENDI CASA)' 아파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곳은 지하 7층부터 지상 20층 규모의 아시아 최초 주상복합형 하이엔드 아파트로 2028년 완공 예정이다. 모든 세대의 가구와 식기에 이르기까지 펜디 까사 제품으로 채워진다. 펜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입주하고 싶을 듯하다.

그러나 아무나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군과 자산 규모 등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 입주민으로 발탁된다. 최근 펜디 뿐만 아니라 베르사체, 아르마니, 불가리 등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자사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레지던스, 리조트, 호텔 등 주거공간을 활용하여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호텔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 브랜드가 호텔을 오픈하는 이유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호텔 사업 진출은 단순한 수익 다각화를 넘어선 전략적 움직임이다. 이는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고객이 제품을 소유하는 것보다 독특하고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트렌드에서 등장했다.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제품의 경쟁력 차이가 없어진 상황, 차별화된 경험은 또 하나의 구매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충족할 수 없는 오프라인 경험의 수요가 증가하며 더욱 심화되었다. 즉,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마케팅의 중요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각광 받은 것이다. 흐름에 발 맞춰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할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호텔이 브랜드의 제품부터 가치와 철학까지 입체적으로 담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두바이 팔라조 바르사체 호텔(Palazzo Versace Hotel Dubai)’이다. 베르사체(Versace)에서 2015년에 선보인 호텔로, 16세기 이탈리안 궁전을 연상시키는 건축 양식에 아라비아풍을 더한 공간이다. 베르사체 아트디렉터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가 직접 객실 인테리어와 가구를 디자인했다. 호텔 내부 가구, 침구, 어메니티 모두 베르사체 제품을 활용해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화제가 되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게 호텔은 고객 체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매장의 고객 체류 시간은 평균 15~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되고, 이미 정보를 습득한 뒤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의 수가 많기 때문에 체류 시간은 더욱 짧아지는 추세다. 반면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3시간 이상을 기꺼이 보내며, 호텔에서는 24시간을 머무른다. 매장에서 고객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한정적이기에, 생활 공간까지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건 아닐까?

‘아르마니 호텔 밀라노(Armani Hotel Milano)’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 디자인한 호텔로 아르마니가 추구하는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브랜드 철학을 느낄 수 있게 조성됐다. 객실 뿐만 아니라 라운지, 레스토랑, 바까지 호텔 내 모든 곳에 아르마니의 색깔을 담았다. 호텔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기반한 긴 체류 시간은 고객에게 객실 뿐만 아니라 음식점, 카페, 스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브랜드와의 접점을 늘린다. 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브랜드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고객은 공간을 통해 고유한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경험은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더욱 높이는 결과로 이끈다.

‘불가리 호텔 도쿄(Bulgari Hotel Tokyo)’ 역시 브랜드의 세계관을 응집하고 있다. 불가리의 역사가 시작된 로마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인테리어와 디자인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한 흔적들이 보인다. 또한 호텔 내부에는 불가리를 사랑한 셀럽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등의 사진과 1970~1980년대 불가리의 광고를 아트 작품으로 장식하고 있어 불가리의 스토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이처럼 장점만 가득해 보이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호텔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바로 비용이다. 호텔은 천문학적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다. 투숙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랜드마크와 가까운 최적의 입지에 건물을 새로 짓거나 임대 후 인테리어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유지비까지 발생한다. 자본력을 기반한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면 호텔 사업으로의 영역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팝업 스토어는 완벽한 대안일까

그렇다면 럭서리 브랜드 외 다른 브랜드는 어떤 방식으로 경험 확장을 시도하고 있을까. 호텔보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모델로 팝업 스토어가 있다. 팝업 스토어는 호텔 사업에 비해 초기 투자 비용이 현저히 낮고, 운영 기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용이하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한정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를 자극하고, 이는 바이럴 마케팅으로도 용이하다. 경험 경제가 중요한 요즘, 팝업 스토어는 브랜드에게 매력적인 옵션인 것이다. 지난 가을 팝업 스토어 성지인 성수동에서 약 2주 동안 50~60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릴 것만 보아도 브랜드, 고객 모두 팝업 스토어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팝업 스토어도 모든 브랜드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단기적인 화제성에 그치거나 지속적인 브랜드 경험 제공과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 구축은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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