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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yinBath Sep 02. 2023

안녕하세요, 웨스트우드 펍입니다.

8. 맥주 위에 계란 푼 거니?

맥주를 따르는 게 뭐 그리 힘들겠는가? 응, 힘들어.


첫 근무날에는 캐롤라인 Caroline을 눈으로 귀로 좇으며 일을 배웠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존재하고 순서대로 착착! 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 물론 운이라는 컨트롤이 불가능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노력만으로도 정해진 순서를 밟아 성공을 이룰 수 있다. 게으름을 죄로 생각하고 자라온 한국인에게 노력을 쏟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기술을 익기 위해 한동안 결실 없이도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운의 영력이다. 


다시 말해 익숙하게 파인트 pint를 따를 수 있을 때까지 기술이 없는 바 메이드 bar maid가 따라준 거품이 가득 올라간 맥주를 받아 들고도 웃으며 마실 수 있는 마음이 넓은 손님을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느냐는 운이라는 거다. 다행히도 내가 일하는 펍 pub은 늘 오는 사람들이 오는 동네의 작은 펍이라 초짜 동양인 바 메이드 bar maid가 엉터리로 따라주는 맥주를 받아 들면서도 곧 익숙해질 거거니 걱정 말라며 눈빛으로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단골들이 많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펍 pub에서 일을 한지 두 달이 지났기 때문에 비록 일한 일수를 다 합쳐도 10번이 될까 말까 해도 맥주를 따르는 일에 요령이 조금 생겼다. 그래도 아직 기네스 Guinness를 정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맥주를 따라는 것에 자신이 조금 붙은 난 은혜 갚는 까치가 되고 싶어 그때 그 단골들에게는 잔 끝까지 찰랑찰랑하게 맥주를 따라주고 있다.


파인트 pint를 잘 따르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할까? '아니, 뭐. 맥주에 거품이 좀 과하게 올라갔다고 해서 그게 무슨 그리 큰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당신들은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검소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늘 여행하기에 비싼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 실제 영국사람들이 얼마나 짠돌이인지 모르는 한국사람들이 많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붙여진 가격표는 1p(우리나라돈으로 10원이 조금 넘는다.) 단위로 손님들의 손길을 잡았다 놓쳤다 한다. 얼마 전 빵 가격이 1파운드(우리나라돈으로 1600원 정도)가 넘었다며 세상에 종말이 왔다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야단이 났었다. 


이런 영국사람들에게 5파운드 정도 하는 맥주 한잔은 꽤나 큰 소비이다. 게다가 맥주 한잔만 마시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가. 그러니 잔 끝까지 황금빛 액체가 가득해도 아쉬울 판에 맥주잔 1/3 가량을 흰 거품으로 채워 건네는 바 메이드 bar maid는 석고대죄를 올리는 게 당연하다. 망나니를 불러 칼춤을 춰야 할 수도...


이제 캐롤라인 Caroline에게 부탁하지 않고서도 맥주를 따를 수 있게 되고 보니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주방일이 끝나고 나면 파인트 pint 한 잔씩 마시는 게 루틴인 셰프들이 일부러 나에게 자신들의 맥주를 따를 수 있게 해 줘서 일할 때마다 한두 잔씩 끝까지 따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를 펍으로 데리러 오는 남편도 내가 연습을 할 수 있게 꼭 한잔씩 맥주를 마셔줬다. 그래도 가장 큰 공은 인내심과 이해심으로 나를 키워준 우리 단골손님들에게 있지 않을까.


이제 기네스만 따를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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