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 우리만의 시간
누구에게나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난 늘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날씨가 허락된 날에는 어김없이 일출을 본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어두운 하늘이 푸른 보랏빛으로 변하다 연핑크빛이 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노란빛 해가 떠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매번 봐도 늘 경이로운 광경이라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핸드폰을 집어 들고 사진을 찍어댄다. 뒷마당 쪽으로 나있는 침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풍경도 참 좋다.
그래도 나에게 시간을 길게 늘여 가장 좋아하는 한 토막만 잘라내라면, 그건 바로 석양이 질 무렵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기예보에 나오는 일몰 시간으로부터 1시간 반쯤 전부터 일몰이 일어나는 바로 순간까지다. 나는 하루 중 이 시간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중에서 특히 낮게 드리우는 낮은 채도의 스러져가는 저녁 빛이 좋다. 그 빛을 온몸으로 맞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별일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어느새 가슴을 가득 채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시간의 한 토막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즐기기 위해 '저녁 산책'을 한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옷장에서 도톰한 양말을 골라 꺼내 신고, 차고에 보관되어 있는 내 장화를 남편이 꺼내 현관문 앞에 놓아주기를 기다린다. 작은 사진기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해가 지고 나면 필요한 손전등도 챙긴다.
내 저녁 산책의 목적지는 늘 같다. 집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10분 정도 가면 있는 필드(field)다. 물론 주인이 있는 풀밭이지만, 일반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퍼블릭 파스(public path)가 존재하고 식용 작물을 키우는 논밭이 아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누구나 자신들의 애완견을 산책시키거나 옆동네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탁 트인 시야 덕분에 일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지켜볼 수 있고,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관찰하고 즐길 수 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모든 순간의 나만의 것으로 음미하는 동시에, 바로 그 공간과 시간을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며 동시에 '우리만의 것'이 되는 것이 나의 저녁 산책의 큰 매력이다.
온전히 혼자가 되어 스러지는 저녁 빛에 의지해 내 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힘을 얻는 그 순간도 사실 온전히 외톨이는 아니라는, 이것보다 더 큰 위안이 과연 있겠는가.
해가 서쪽하늘로 넘어가며 파랬던 하늘빛이 옅은 분홍빛으로 바뀌면, 망설이지 말고 저녁 산책을 나서자. 나만의 시간과 우리만의 시간을 위해, 오랫동안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 가득 위안의 빛을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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