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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yinBath Apr 08. 2017

Polo, the cat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폴로(Polo)를 소개합니다.


폴로는 남편과 나의 절친이며 바로 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 롭(Rob)과 디(Dee)가 키우는 고양이이다. 사실 폴로는 엄밀히 따지면 디의 고양이다. 디가 롭을 만나기 이전에 폴로를 홀로 분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로 그들이 부부로 함께 산 지도 10년이 되었고 롭도 폴로의 사료 벌이를 10년째 하고 있는 셈이니 폴로의 제2의 마스터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남편과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지 않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행 잦은 지금 우리의 생활패턴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남편은 20대에 레트리버와 스패니얼 크로스를 친구에게 받아 10년이 넘게 키우다 하늘나라에 보냈고, 나 또한 20대 때 혼자 서울생활을 하면서 잉글리시 코커스파니엘을 분양받아 3년을 넘게 키우다 사고로 먼저 떠나보냈던 기억이 있어, 다시 개를 키우겠다고 나서기를 망설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우리에게 앞집 폴로는 가끔 뜻밖의 기쁨을 준다. 사실 보통 고양이들은 도도하고 고고하기의 그 끝을 알 수가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불러도 대답 없는,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들이 아닌가. 하지만 폴로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도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고양이답다. 행동이 새침하고, 어느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 척하며, 쉽게 머리를 만지도록 허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폴로, 더 캣은 

1. 개처럼 식구들이 집을 비우면 대문 앞에 새초롬하게 꼬리를 말고 앉아 보초를 선다.

2. 우연히 산책을 나서는 날 발견하면 버선발로 달려와 야옹거리며 인사를 한 뒤 함께 걷는다.

3. 내가 무슨 이유에서 앞집을 방문하면 내 볼일이 끝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다 날 바래다준다.

4.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유리로 되어 있는 우리 집 뒷문 앞에 앉아 집안을 뚫어져라 응시해 날 놀라게 한다.

5. 정원에서 썬 배딩(sun bathing)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나타나 내가 마시는 음료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앞집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갔을 때, 일주일 동안 폴로의 식사를 챙겨준 적이 있다. 가족들이 없어서 그런가 폴로는 집을 자주 비웠고 하루 두 번 밥을 챙겨주러 가는대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일주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때를 잘 맞추어 간 난 폴로를 볼 수 있었다. 저녁밥이라 폴로가 좋아하는 통조림도 한 통 꺼내 주고 식사를 하는 내내 옆에 앉아 잘 먹나 그를 관찰했다. 밥그릇이 거의 다 빈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폴로에게 인사를 한 뒤 열쇠를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가려 현관문 앞에 섰다. 폴로는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어서 문을 열라는 눈빛을 쏘고 있었다. 야행성인 고양이니 저녁 산보를 가려느니 생각하고 폴로와 함께 이웃집을 나왔다.


롭과 디의 집은 우리 집과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어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폴로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우리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폴로가 내 발끝을 떠나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 앞장서 우리 집 앞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어서 오라 재촉하듯 야옹거리며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그제야 난 폴로가 날 바래다주려고 했음을 알아챘다. 그런 폴로가 난 사랑스럽고 여행 간 가족들 없이 혼자 집에 남겨진 그가 안쓰러워 폴로를 바래다주기로 결심했다. 


'폴로야, 너희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릴레이 배웅은 1분도 걸리지 않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장장 3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결국 포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양이 폴로에게 인간인 앞집 여자는 길 한복판에 서서 이제 그만 따라오라며 사정사정해야만 했고 그 이후에도 30분 동안이나 양쪽 집을 오가며 다리를 혹사시킨 후에 그 지옥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념의 폴로 더 캣을 경험한 후에, 폴로를 밖에서 만난 경우 난 절대로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날 알아보고 굉장히 시크한 도시 남성처럼 길을 건너와 나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내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비고 내 앞에서 몇 번의 뒹굴기를 한 후 새초롬하게 나와 거리를 조금 두고 앉아 내가 움직이길 기다린다. 그럼 난 제발 큰길까지는 따라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한 후 마치 경보를 하듯 그와의 거리를 벌리며 힘껏 걷는다. 


어제도 난 밖에서 봄볕을 쬐고 있던 폴로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이 봄이 끝날 때까지 난 폴로 더 캣과 힘겨운 배웅 배틀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할까. 그래도 스토커 고양이, 폴로 더 캣이 있어 나의 봄날은 한층 흥미롭다.


인사를 건내러 길을 건너 오는 폴로
여러가지 구르기 동작 시연에 여념이 없는 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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