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글안 Dec 19. 2023

영하 10도에 밖에서 일해보기

정원사의 겨울나기  

하루 중 최고 온도가 영하 6도인 날 서울 식물원에 현장 인터뷰를 갔다. 날씨가 조금 원망스러워 좀 귀찮기도 했지만 다음 주도 추울 게 뻔해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면 좀 나을까 싶어 식물원 근처에서 따뜻한 커피와 마들렌을 샀다.  대체 이 추위에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해하며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보니 이미 만차에 주차 행렬이 어느 때보다 길었다.


추워서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는데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이 참 많구나 싶었다. 제2 주차장은 입구에서 거리가 멀어서인지 자리가 많았다. 커피가 식을까 부둥켜안고 걸어오다 보니 동네 공원에서 작업복을 입고 현장 일을 하는 분들이 계셨다. 옷도 나보다 얇게 입고 계셨다.  



'이런 혹한에도 외부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구나.'



이 추위에 호수원은 또 얼마나 추울까 싶었지만 내가 저지른 일이니 수습도 내가 해야 한다. 조용히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하던 일 하고 그냥 살면 좋을 텐데 해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은 내가 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야 인터뷰로 만들 컨텐츠가 있어서 몸이 잔뜩 웅크러드는 날 식물원에 왔지만 정원사 K는 내 부탁을 들어주신 거라 너무 고마웠다.   


'오늘 진짜 추운데 호수원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그럼요. 일하죠.'

식물원에 도착하자 소형 트럭으로 이동하고 계셨다.

'타세요'

'와 이런 명품카를 타보다니 영광입니다.'


추운데 다행이다 싶어서 얼른 올라탔다. 사실 다리가 짧아서 낑낑거리며 탔다.



정원사 K가 이렇게 추운 날 왜 차에서 히터를 안 틀고 다닐까 궁금했다.


'오늘 추운데 왜 히터를 안 트세요?'


'아, 히터 틀면 매연이 나와서 틀기가 좀 그래요. 저희가 항상 저속으로 다니니까 안에 가스가 쌓인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안 틀어요. 공원에 산책하러 오신 분들한테도 안 좋잖아요. 전기차로 바꿔 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맞는 말이었다. 식물원인데 매연을 뿜고 다니는 건 말이 안 된다 싶어 수긍이 됐다. 다행히 트럭에 타면 춥지는 않았다.




겨울 정원과 정원사의 겨울 일상을 담기로 해서 업무 일정을 잠시 따라다니기로 했다. 트럭으로 이동은 했지만 차에서 내릴 때마다 금방 코가 빨게질 정도로 추웠다. 사진을 찍느라 장갑을 벗으면 얼마 안 가 손도 마비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취재는 점점 재밌어졌다. '체험 삶의 현장'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도구로 일하는지 궁금해서 쓰는 장비나 가위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흙을 쓰는지도 궁금했다. 어떤 작업복을  입어야  이 추위를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서 작업복 차림도 찍었다. 젊고 체력이 좋아서인지 춥다고 말하면서도 나처럼 껴입지는 않았다. 트럭에 내려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온몸이 어는 것 같았다. 겨울 정원사가 혹한기 현장 노동자인 건 부인할 수 없었다. K는 장갑을 끼고 죽은 식물 정리와 가지치기를 이어갔다.









호수원에 있는 데크에서 여러 사진 몇 컷을 찍기로 했다. K는 원래  예수님 머리 스타일에 모자를 쓰고 다녀서 그냥 자연주의자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히피펌을 하고 나타나서 예수님에서 늑대소년(?)이 되었다. 갈대밭에서 감성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아무리 찍어도 머리가 나오면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었다. 큰 웃음을 주는 신상 머리였다.  





인물 사진은 그 정도로 하고 식물원 풍경도 하나씩 찍었다. K가 추천해준 스팟도 찍었다.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서 바라본 호수원은 또 새로웠다.



가지들이 잎을 다 떨군 겨울 정원이었지만 그라스들이 있어 온기와 질감이 다 사라지진 않았다. 그라스류들이 너무 좋아서 우리집 베란다에서 키워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갈대 사이사이로 비치는 윤슬이 어찌나 반짝이는지 추위만 이겨냈더라면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호수원을 이동하다 보니 꽁꽁 싸매고 나와 산책로를 걷거나 운동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나도 집 앞이면 더 자주 왔을 것 같다. 재택이 많은 기간에는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서울 식물원 호수원은 시야가 탁 트여서 눈에 거슬리는 게 없다. 드넓은 자연은 늘 넉넉하게 나를 맞아준다.  

겨울의 풀밭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키복과 잠수복을 입는 정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