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er of SEOUL BOTANICAL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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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YUNG DO
EPISODE 1
김병도 정원사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 서울 식물원 근처에서 열린 한 마켓에서였다. 당시 나는 식물 셀러로 참여해서 내 부스에 들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들떠 있었다. 부스에 온 김병도 정원사는 옷차림에서 이미 직업 추측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식물 관련 일을 하냐고 물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하고 있어요.’
신기하고 반가운 사람이었다. 서울 식물원을 가본 적은 없지만 궁금한 곳이었고, 식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잠깐이었지만 각자의 식물 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냥 보내서는 안 될 사람인 것 같아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 팔로우했다. 피드에 식물 일러스트 작업물이 쌓여 있었다. 서울 식물원도 궁금하고, 식물 그림을 그리며 식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궁금해졌다.
‘언제 한번 서울 식물원 투어 시켜주실 수 있나요?’
‘너무 좋죠. 놀러 오세요.’
김병도 정원사의 휴무일에 식물원에서 만나 전체를 돌았다.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조현진 작가님도 동행했다. 우리에게 하루를 내어준 마음에 감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을 드려 인터뷰를 요청하고 12월 초 파주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김병도 정원사를 만났다.
요즘 날이 추워서 노동 강도가 더 셀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갔을 때 영하 10도 정도였는데 그런 날도 외부작업을 하세요?
제가 하는 일이 식물원 외부에 있는 호수원이다 보니까 극한의 날씨가 아니면 야외에서 일을 해요. 그래서 방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외부로 나와요. 거의 스키 복장으로 나오죠. 내의 다 입고 핫팩도 착용하고 나와요. 너무 추우면 이동하는 트럭에서 잠깐 쉬기도 하고요.
최근에 식물원에 들러보니까 갈색 정원이 되었던데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제일 큰 작업은 구근 식재였죠. 12월 초까지 구근을 심었어요. 튤립, 수선화, 알리움, 히아신스 등 심었어요. 10만 개 정도 식재한 것 같아요.
팀원이 12명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단기간에 식재가가능한가요?
가능은 하죠.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면 다 못해서 드릴 공구로 땅을 살짝 파 가면서 분업으로 식재해요. 구근 식재가 끝나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 정리를 하고 억새도 살짝 쳐요. 겨울에도 볼거리가 필요하니까 조금 남겨둬요. 그라스들은 안 보이는 것부터 조금씩 정리하고 쓰러진 지주목 있으면 다시 세워줍니다. 이제 사초 베는 작업도 차차 해야죠.
그리고 수목 월동 준비로 배롱나무 같은 남부 수종은 수피 보호를 위해 녹화마대로 감싸줍니다. 그리고 저희 호수원이 물을 많이 쓰는데 동파 예방 차원에서 바닥에 있는 물을 미리 다 빼요. 배관이 얼면 터져버리니까 물을 다 빼고 잠궈야 해요. 겨울에 꼭 해야 하는 필수 작업이죠.
그러고 보니까 호수에 직접 들어가시던데 이렇게 추울때는 안 들어가죠?
며칠 전까지 들어갔는데 이제 거의 안 들어갈 거예요.
일의 강도가 정말 세네요.
그렇죠. 영상 하나 보여드릴게요. 이거 인스타에 올리려다가 안 올렸거든요. 11월 말인데 이때 너무 재밌어서 영상을 찍어뒀어요. (영상 속에 김병도 정원사는 잠수복 같은 옷을 입고 허벅지 높이 정도의 호수에 들어가 있다. 살얼음을 깨며 물에 한 발 한 발 들어가고 있다) 호수 안에 식물이 지저분해져서 정리하려고 들어갔어요. 이런 것도 현장이고 제 일이라 생각해요. 전 재밌는 작업이라 느껴요. 그런데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거의 안 들어가요.
어떤 계기로 서울 식물원에 지원하게 되셨어요?
일단은 식물원에서 일하고 싶었고 서울 식물원에 대한기대와 동시에 수도권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림 작업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아직 있고 해서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구대학교 식물원에 있는 수목원 전문가 과정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10개월 정도 기숙 생활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어요.
수목원에서 식물 공부 많이 하셨겠네요.
네. 그렇죠. 저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아침저녁으로 식물을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식물 분야에서 일하신 지 5년차 정도 되신 것 같은데, 일에 대한 회의감은 없었나요?
있었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일을 몇 개월 맡았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예초기로 풀을 다듬는 일을 몇 개월 한 적이 있었는데 반복적인 노동만 수개월을 하니까 정신적으로도 지치더라고요. 몸이 힘든 거야 예상했던 부분인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마음까지 힘들었죠.
제가 정원사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여기에 다 싣지 못한 이야기까지 모아 보면 식물에 대한 애정만으로는이 일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잘 극복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식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저는 뭔가 명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경쟁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자연은 그냥 보고 있으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평화로워 보이더라고요. 경쟁을 하지 않고도 잘 지내는 것 같았죠. 물론 엄청난 경쟁 상태라는 걸 식물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긴 했지만요(웃음).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대학교를 휴학했을 때 부모님과카페를 하게 됐어요. 본가가 평택인데 거기서 의도치 않게 카페를 오픈하면서 재밌는 일들이 있었죠. 그때 부모님과 직접 농사를 지었어요. 저희가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카페 브런치 메뉴와 음료를 만들었어요.
카페 운영하는 것도 재밌었고 농사지으면서 느끼는 그기쁨이 엄청 나다라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작물을 키워보니까 그래도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느껴지면서 그 과정도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직접 키운 채소로 제철 음식을 해 먹는 것도 굉장히 행복했어요.
제가 또 가드닝을 좋아하니까 식물을 분갈이해서 팔기도 했어요. 카페를 운영하기는 했지만 식물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복학해서 졸업하고 신구대학교에서 조경 가든 대학 과정을 시작으로 식물 공부를 시작했어요. 식물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배우면서 식물에 대한 마음이 더 확고해졌어요.
식물원에서 일하면서 뜻밖의 즐거움은 뭐가 있었나요? 좋은 복지가 있다면 소개해 주셔도 좋고요.
저희 식물원에 식물 전문 도서관이 있어요. 몸이 안 힘들 때는 점심시간마다 가서 1시간씩 꼭 공부하고 내려왔어요. 저는 직원이라 책 대출도 가능해서 식물과 정원 관련 책을 자주 보고 있어요.
거기 있는 원서들이 정말 다양해요. 저도 반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려서 못 사는 서적도 식물원 도서관에서 다 볼 수 있어서 이것만 해도 엄청난 혜택이라 생각해요. 원서로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항상 마음을 먹고 빌리는데 참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꽃의 절정의 순간을 볼 수 있어요. 정원 꽃들의 절정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저도 직원이 아니라면 못 봤을 텐데 식물원을 돌다 보면 언제 절정인지 대략 아니까 안 놓치고 꼭 보려고 해요. 개화 전후 과정까지 볼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잖아요.
제가 빅토리아 수련이 개화하는 걸 보려고 퇴근하고 다시 식물원에 온 적도 많아요. 8월부터 개화가 시작되는데 저녁 8시에서 12시 사이에 주로 피어요. 한 개체에서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계속 올라오고, 이틀 정도 제대로 볼 수 있어요. 언제 피는지 정확한 시간을 모르니까 매일 확인하고 오늘 저녁에 피겠다 싶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식물원에 와요. 가까이 가서 보려고 가슴 장화까지 챙겨서 밤에 호수원에 들어가는 거죠.
그 누구보다 욕망이 가득한 분이시네요.
(웃음) 내가 관리하는데 내가 그 절정을 못 보면 말이 안 되잖아요. 아무도 시키지는 않았는데 제가 좋아서 하는 거죠. 그리고 꽃이 밤에만 피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면 이미 늦어서 못 보거든요. 수련 개화 시기가 되면 저녁 시간에 삼각대 들고 오신 분들이 주변을 둘러싸요. 지난여름에 제가 한 10번 넘게 밤에 호수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개화한 걸 본 적은 없어요. 흐리거나 비가 온 날에는 빨리 펴요. 빛 광량에 민감한 것 같아요.
빅토리아 수련처럼 또 애착이 가는 식물이 있나요?
이번에 서울 식물원에 가시연이 들어왔어요. 가시연은저희 자생종이고 빅토리아 수련이랑 외관은 약간 비슷하게 생겼어요. 꽃은 확실히 아담한 편이고 처음 키워봤는데 다행히 저희가 잘 키웠어요. 한 주인데 씨앗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받았고 종자를 잘 채집해서 한 4~500개는 얻은 것 같아요.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씨앗은 재배 온실에 전달드렸어요. 씨앗이 많으면 재배 온실에서 여러 가지 실험도 많이 해보실 수 있거든요. 가시연은 우리 자생 늪지 분위기가 나서 애착이 많이 가는 식물이에요.
김병도는 정원사라는 타이틀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군더더기 없는 말 속에는 식물을 가까이 하고픈 진심이 가득했다. 인터뷰 시작점에서는 6-7kg의 체중이 감량되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까지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자연과 더 가까이 살아가는 자연주의적인 삶을 그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과 삶의 경계가 흐릿해 보인다. 도시에 살지만 종일 식물을 만지고 퇴근 후에는 암벽 등반을 동경하며 실내 클라이밍을 하고, 주말에는 조용한 곳을 찾아 식물 그림을 그린다. 본가에 '로우'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도시에 사는 타샤튜더가 아닐까.
김병도의 데일리 아이템
식물원 호수에서 일하다 물 속에 휴대폰을 떨어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식물원에서 준 작업복은 주머니가 벨크로로 되어 있어도 틈으로 휴대폰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거다. 이러다 휴대폰이 남아나질 않겠다 싶어 파우치를 검색하다가 Dewalt 휴대폰 파우치를 구매했다. 작업용 공구와 제품을 주로 다루는 브랜드로 알고 있다. 파우치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도 내 취향을 어느 정도 담을 수 있는 제품을 찾았다.가격도 1만원 대 초반으로 저렴하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