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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안 Feb 08. 2024

저는 북한 식물 자원을 연구합니다

DMZ 자생식물원, 조승주 연구원

www.chosimzine.com

Jo Seugju

EPISODE 1




비슷하지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


초심의 첫 번째 인터뷰이였던 김병도 정원사를 통해 강원도 양구군 DMZ 자생식물원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을 때는 외진 곳에 있는 조용한 식물원 정도로 상상했다. 두 번째 인터뷰이로 어떤 인물을 섭외할까 고심하다가 DMZ 자생식물원에 대해 알아보니 뚜렷한 정체성에 매료되었다. 김 정원사의 지인이기도 한 조승주 연구원을 만나러 간 날 식물원은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어 우리는 장화를 신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분들과 간접적으로 접한 분들만 생각해 봐도 식물 분야의 직종이 꽤 다양한 것 같아요. 나무 의사, 조경 설계사, 정원가, 조경 디자이너, 실내 조경가, 식물 일러스트레이터, 화분 제작가, 식물 분류학자, 식물 연구원 등 수십 개를 나열할 수 있거든요.


조승주: 처음에는 식물 하면 정원 관련 일만 있는 줄 알았어요. 정원설계, 정원관리 분야만 있는 줄 알고 있다가 신구 수목원 전문가 교육과정에 들어가서 좀 더 알게 됐죠. 식물원만 해도 전시원 팀 말고도 연구팀도 있고 교육팀도 있고 홍보팀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제가 일하는 DMZ 자생식물원에 와서 보니까 생태 연구,재배, 증식 등 다양한 분야가 또 있더라고요. 에디터님 말처럼 식물을 알면 알수록 모든 분야가 독특한 자기만의 분야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속한 생리 연구실 안에도 재배 생리 연구, 종자 생리 연구, 그리고 조직 배양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자연과의 연결 


건축학을 공부하신 걸로 아는데 식물 분야로 넘어오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건축은 사람과 무언가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도 있고, 자연과 사람을 연결할 수도 있고, 어떤 가치를 사람한테 연결시켜줄 수도 있는 거죠. 이 모든 걸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게 건축이라고 배웠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공간에서 멋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제가 하는 건 ‘재배생리’라 건축에서 멀어진 거 같아 보일 수는 있어요. 어쨌든 건축을 시작으로 해서 자연 공간을 알아가면서 관심이 생겼고, 자연 공간 조경에서 이제 식물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조금 옮겨왔죠. 그러다 보니까 생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뭔가 한 번에 여기로 넘어왔다기보다 건축에서 정원으로 갔다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제는 식물 재배애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원이나 조경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때가 있으실 것 같아요.


건축 설계를 배울 당시에 뭔가 나에게 딱 맞는 일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난 어떤 걸 좋아하는지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죠. 그래서 여러 가지 길을 직간접적으로 물색해 봤죠. 그러다가 정원 사진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관심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때 군복무 중이었는데 그때 식물 관련 책을 읽다가 ‘닭의장풀’이라는 식물 이야기를 접하게 됐어요. 그 이야기를 읽고 마침 점심을 먹으려고 건물을 나서는데 건물 앞 하수구에 닭의장풀이 딱 있더라고요.


그 순간에 드는 생각이, 이 풀은 항상 여기 있었을 거고,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거에 좀 놀랐어요. 그때부터 제 주변에 살아가는 식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부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관찰하기 시작했죠. 저처럼 이렇게 식물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좋은 기회나 환경이 주어지면 식물과 자연을 가까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사람과 식물과 자연을 함께 연결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원이 그런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정원을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 정원과 조경 분야에도 다양한 직종이 있다는 걸 알아보시고 결국 식물원 쪽으로 오신 거네요. 서울 식물원 김병도 정원사님과 함께 교육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연구원님은 전문가 과정 수업이 어떠셨나요?


제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식물 관련 교육을 받고 싶었거든요. 여러 길을 찾아보다가 수목원 전문가 과정을 알게 됐는데 끌림이 있었어요. 수료 후에 2019년-2020년도에는 신구대학교 식물원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고, 2021년도에 DMZ 자생식물원 수목원 코디네이터로 처음 오게 됐죠.

그럼 여기 DMZ 자생식물원이 첫 직장이나 다름없네요.

네 맞아요. 신구대학교 수목원 전문가 과정에서는 거기서 배우고 실습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어요. 제가 원예나 조경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까 배울 게 많았지만 재밌었어요.

어떤 과정에서 재미를 가장 많이 느끼셨나요.

교육생 3~4명이 한 팀을 이뤄서 연구 과제를 하나씩 했어요. 신구대학교 식물원에서 라일락속을 수집하고 증식해서 보급하는 사업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라일락 속 삽목과 종자 번식을 맡았고요. 종자를 발아시켜서 삽목한 식물이 이제 뿌리를 내리면 다른 곳에 옮겨 심는 과정들을 연이어 했는데 그때 가장 재밌었어요.


북한 식물 자원 연구원이 되다


그럼 지금 여기 DMZ 자생식물원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국립수목원 DMZ산림생물자원보전과 전시원 관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저희는 북한 식물자원 수집 및 활용 연구팀입니다. 저희 팀이 하는 일은 지금 북한 산림이 기후 변화로 인해서 자연재해도 많이 일어나고 먹을 게 부족해서 화전도 많이 한다고 해요.



화전을 한다는 건 먹을 게 없어서 산을 태워서 그 자리에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려고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요?


네 맞아요. 경지를 싹 태워서 거기에 밭을 조성해서 먹거리를 마련하려는 거죠. 그리고 안타까운 건 북한 희귀 식물이 점점 늘고 있어요. 식물 종 다양성이 많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북한 자체에서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저희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통일이 된다고 하면 북한 자연을 복원해야 하거든요. 초기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라 현재 북한에 어떤 식물이 살고 있는지 데이터화하고 수집할 수 있는 식물은 수집을 하고 있어요.


저희 팀이 하는 일은 북한 식물의 증식 및 재배법 기술을 개발해서 이런 내용을 알릴 수 있도록 전시회나 저희 식물원 안에 전시관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 북한 식물 재배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요. 북한 식물을 수집해서 저희 식물원 안에서 보전하려고 하는데 어떤 환경(광, 토양, 수분, 건조 조건)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실험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물원을 조성해 나가고 있죠.


그럼 지금 여기 자생 식물원이 물리적으로 완성된 형태라기보다는 조성 중인 게 맞네요. 


식물 목록까지는 정리가 된 상태예요. 우리나라도 자생 식물 목록을 산림청에서 데이터를 만들 듯이 북한도 ‘조선식물지’라고 발행하더라고요. 저도 도서관에서 본 자료예요. 또 북한 연구진들이 인터넷에 식물 분포 데이터를 기록하더라고요. 그것도 참조하죠. 그래서 북한에만 살고 있는 식물 자료를 정리하긴 했습니다.




그럼 북한 식물을 어디서 구해요? 


북한 식물이라고 해서 북한에만 있는 건 아니고요, 한반도를 기준으로 북한부터 분포하는 식물들이라 중국, 러시아, 몽골 등에 분포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와 네트워크를 해서 종자나 생체를 분양을 받아서 수집을 하고 있어요.


DMZ 안에 다양한 생태계가 지금 형성되어 있잖아요. 거기를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죠?


저희 연구 과제 중에 DMZ 일원에 미조사 지역의 식물을 조사하는 연구가 있거든요. 일부 지역은 식물상 조사가 안되고 있는 영역이 있긴 해요. 왜냐하면 저희가 그 지역에 들어간다 해도 굉장히 한계가 있죠. 국방부나 UN에 미리 신고를 하고 들어가긴 해도 그 정 가운데까지 가지는 못해요. 철책에 딱 붙어서 눈에 보이는 정도까지만 들어갈 수 있어요. 저희가 지금 조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정중앙으로는 못 가죠. 현재로서는 미지의 공간이죠.


제가 올해부터 석사 후 연구원이고 재배생리를 공부했어요. 여러 가지 환경에서 식물들이 광합성 기능이 좋은지, 어떤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연구하는 거죠. 자생지에 가서 우리가 식물을 보면 저희가 감으로는 알 수 있지만 어떤 환경이 좋다고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수치화하고 데이터화하는 거죠.


지금 식물원에서 기숙하시고 계시는데 하루 일과와 업무도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제가 현재 내부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출근 시간 30분 전에만 일어나도 되서 아침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에요. 9시까지 출근이라 보통 8시 40분쯤 사무실 나가서 커피 한잔하면서 시작하죠. 계절마다 업무 내용은 좀 달라지긴 하는데요. 제가 계절에 따라 연구할 만한 생체가 필요하니까 봄에는 파종을 하고 늦여름에는 자란 식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겨울에는(새해) 전 해에 연구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문 작업을 해요. 올해 실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내년 실험 설계를 짭니다.





연구원으로서 일하면서 제일 재밌거나 뿌듯한 순간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연구원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식물상 조사를 많이 따라다녀요. 처음에는 식물에 대해서 많이 몰랐기 때문에 많이 배웠어요. 보통 산이 적으면 100종에서 많으면 300종까지 있어요. 한 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엄청 많이 배워요. 계절이 바뀌면 갔던 산을 또 가거든요. 달라지는 풍경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죠. 다양한 식물을 접하고 배워가는 과정이 재밌고 뿌듯해요.


이 직업에 너무 어울리는 분이신 것 같아요. 지금 약간 50~60대 중년분과 이야기 나누는 것 같아요. 선생님 이제 막 30대가 되셨잖아요. (웃음) 어떻게 보면 제 편견이죠.


식물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어디를 가든 재밌어요. 볼 게 많아지니까요. 저희 식물원에 어르신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봄이 되면 점심시간에 뒷산에 같이 가서 꽃구경하는데 재밌어요. 저희 식물원에 산림조합에서 평생 일하시다가 오신 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아래만 본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힘들거나 어려운 줄 알았으면 여기 식물원에 안 왔다, 싶을 때가 있으세요? 없을 것 같지만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제설 작업을 많이 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제가 부산에서 군복무를 해서 눈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외부 정원(전시원)에 자주 나가세요?


업무적으로 자주 나가기도 하는데 여름에 더 자주 나가요. 여기는 여름에 더 풍성해요. 자생초들이 한여름에 만발해요. 늦여름이 되어야 확 풍성해져요.


온리원 가든 : DMZ Native Botanic Garden


저는 여기 자생식물원에 철망을 세워둔 곳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는 삭막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 여기밖에 없는 주제 정원이잖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향기가 만발하는 정원만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하는 건 오히려 진부하잖아요. 여기는 정체성이 확실한 곳이라서 더 끌렸어요. 


그런 의미들이 있는 구조물을 조성하거나 다른 곳에 있던 걸 옮겨오기도 했어요. DMZ 내부에서 나온 탄피나 폭탄 조각을 녹여서 만든 구조물 종이 있어요. 저희 식물원만의 특색이죠. 거기는 이름도 ‘War Garden’이에요.



이 식물원에 오시는 분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장소가 있을까요. ‘여기 오면 이건 꼭 보고 가야 된다’라고 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저희 식물원 윗쪽에 북방계 식물 전시원이 있어요. 평소에는 비개방 지역인데 5월 중순에서 말까지만 임시 개방을 하는데 그때 북방계 식물원 개방 행사를 해요. 만약에 한 번쯤 와보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리고 싶어요. 평소에 비공개로 두는 이유는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보통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들이라서 저희 식물원에도 소수로 보유하고 있는데 도난이나 훼손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지금은 일시적으로만 개방을 하고 있어요. 저희가 개체수를 충분히 보유하게 되면 개방 기간을 좀 늘리려고 합니다.


이곳을 찾으시는 분들은 일반 관람객분들이 많으신가요? 


보통 오시는 분들은 희귀 식물 사진을 찍고 싶으신 분들이 오시죠. 희귀 식물의 개화 기간에 맞춰서 많이 오시죠.


여기 식물원에 애착을 갖고 계신 식물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꼬리까치밥나무를 좋아해요. 2021년 3월에 여기 처음 입사했거든요. 초봄에는 여기 식물원이 좀 삭막해요. 큰 나무도 많이 없고 해서요. 꼬리까치밥나무가 관목인데 4월 초중순에 꽃이 피어요. 고리 모양의 노란색 꽃이 피는데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식물이고 제가 식물원에 와서 처음으로 본 꽃이라 애정이 생겼어요. 연구 주제로 삼은 적도 있는데 잘 안됐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조경수로 보급해 보고 싶은 저만의 꿈이 있어요.




자생 식물로 조성된 정원이라 일반 정원처럼 관수를 하지 않는 것도 이곳 전시원(정원)의 특별한 점이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 속으로 눈이 들어오기 시작해도 정원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에는 DMZ 자생식물원에 대한 궁금증이 더 피어나서 공식 인터뷰가 끝나고도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우리가 살면서 북한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식물'은 '봄날의 곰'처럼 온도차가 큰 양극의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북한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라는 입에 자꾸 담다 보니 기분이 묘하게 달라졌다. 지금은 수북히 쌓인 눈 아래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식물들을 따뜻한 5월에 꼭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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