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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Jan 11. 2024

인간 중에서 누가 신이 되는가?

김순이의 《제주 신화》(여름언덕)

편해문의 글이었던가? 어린이들이 골목대장을 정하는 방법이 무척 특이하고 공감이 갔다. 싸움을 잘 하는 애가 골목대장을 먹는 게 아니라 어디 크게 다친 애가 골목대장을 한다. 팔 다친 애보다 다리 다친 애가, 다리 다친 애보다 머리 다친 애가. 이렇게 골목대장을 정하는 이유는 고통의 크기인데, 그건 경험의 크기이며 세계의 크기이기도 하다. 딱 제주 신화의 신들이 바로 고통의 크기로 등극한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나서 제주 신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스즈메와 함께 우연히 추천받은 책은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을 지향점으로 삼으며 라투르의 대칭성 개념을 결론으로 삼은 <대칭성 인류학>은 신화적 사고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다른 지역의 신화에 비해서 특히 제주신화가 대칭성의 상상력과 위력이 강한 까닭은 출륙금지 정책 때문에 수백 년 간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제주는 우리 나라의 정신적 DMZ이다.


스즈메가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까닭은 엄마를 찾아 헤매며 저승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제주 신화는 한 번 죽음을 거치고 돌아오거나 죽음과 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나서 신으로 등극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과의례이다. 죽음을 거치면서 고통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토산 여드렛당 신은 나주 영주 금성산이었는데 제주로 내려와서 좌정할 데가 없었다. 겨우 틈을 찾았으나 지역민들이 물 한 잔 올리지 않자 고통을 함께 하는 기획을 한다. 왜놈들이 노략질과 겁간에 고통 받은 경험을 함께 한 것이다. 아기씨와 하녀로 변신해 왜놈들에게 겁간당해 살해당한다. 개로육서는 왜놈들의 배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복수하고 토산 여드렛당은 지금도 영급 좋은 신으로 추앙받으며 지역민의 액막이와 안녕과 부와 장수를 관장한다. 의료기술과 치료혜택이 육지보다 열악한 사정은 영아사망률을 높였는데, 제주신화에는 애기할망이라는 아기 신이 적지 않다. 마라도 애기할망은 열두 살 때 애기업게(아기 돌보는 소녀)로 갔다가 주인 부부에게 배신당해 섬에 갇히고 그대로 바위로 되어 버렸다. 진안할망은 더욱 기구하다. 왜놈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담 쌓기 작업을 하는데 지을 때마다 부서지고 노역자도 줄어들어서 관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게도 노역 의무를 강제하다가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성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농담처럼 여섯 살배기 아기를 성담 아래 생매장하기에 이른다. 에밀레종의 제주 버전이다. 성담은 그 후로 무너지지 않고 왜놈의 피해도 적었지만 한 번 잃은 생목숨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는가?


제주의 신은 고통의 신이며, 제주 신화는 고통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더욱 제주 신화를 읽게 된다


현용준의 제주 신화는 남성 중심의 해석이라면 김순이의 제주 신화는 여성 중심의 해석이다. 신화 독자 입장에서는 균형을 맞출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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