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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11. 2024

#020(D-81)16세기 여성예술가의 삶

부암서울미술관에서 신사임당을 생각하다

책 <조선, 아내 열전>을 읽어보면 16세기는 조선에서 탁월한 여성예술가가 출현한 주목할만한 시대라고 서술한다. 대표적인 예술가가 바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다. 사실 신사임당은 5만원 지폐의 주인공으로서 너무나 유명한 여성이기에 실제 어떤 삶을 살았을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암서울미술관의 전시를 다녀온 후 신사임당이라는 인물 자체에 호기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책에서만 인쇄된 그림으로 보던 <초충도>를 실제 전시된 원화로 보니 정말 그림그리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뭐랄까. 단순한 터치인데 그 생명체의 강한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소재 자체도 특이했다. 수박을 파먹는 쥐 두 마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새빨간 수박색이 쥐의 입에 있는 비주얼 자체가 섬뜩하기도 했다.      



신사임당(1504~1551)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또 아내로서만 후대에게 알려졌는데 과연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율곡 이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장녀 이매창은 시화에 능했고 막내아들 이우 역시 예술가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자녀들을 이렇게 다 훌륭하게 길러냈지만 정작 이이가 열 여섯 살 때 삶을 마감했고, 살아가는 동안 남편과는 그다지 다정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병으로 앓아누워있는 동안 남편 이원수는 첩(주막집 주모로 알려짐)을 두고 따로 살았으며 전해오는 말로는 3년상이 지나자마자 재혼하여 자녀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하니 살아있는 동안에도 부부간의 정이 깊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긴 조선시대에 부인이 자신보다 학문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남편이 좋게 받아들였을리가 만무하다.

 




같은 시기, 서유럽에서는 종교개혁으로 사회가 들썩이던 시대이면서 르네상스였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흐름과는 달라 유럽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조선시대만큼이나 매우 낮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서유럽과 북미가 20세기부터는 확실히 아시아보다 여러 면에서 진보했지만 여성의 지위만 보면 다를 게 없다는 게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예술가들, 예를 들어 클라라 슈만은 (1819~1896) 피아니스트로서 생업을 이어가면서 작곡가 로베르토 슈만의 아내로서 자녀들의 엄마로서의 역할도 함께 충실히 했었고 멘델스존의 누이인 화니 멘델스존(1805~1847) 역시 남동생만큼 이름이 알려져있지 않지만 무려 500여 곡의 작품이 남아있는 천재적 음악가이자 지휘자였다.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 이름을 써야만 했던 영국 여성 시인 메리 앤 에번스(Mary Anne Evans)(1819~1880),  우리가 잘 아는 브론테 자매들도 당시 남성 필명을 써야했다. 그 외에도  오귀스트 로뎅에 가려졌던 까미유 끌로델 (1864~1943),르누아르, 로트렉, 드가의 모델이자 에릭 사티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1865~1938) 등등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그 시대에 심한 차별 속에서 힘든 예술활동을 해야했다.  그런데 자료 조사를 좀 하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최근 현대 남성작가들이 성중립적인 필명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좀더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 


때마침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을 생각하면서, 여성예술인의 삶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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