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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Dec 17. 2020

조금은 귀찮을 필요가 있어

스마트한 세상에서 한발 느리게 걷기

 심심할 땐 지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구경한다. 오늘도 버스를 기다리며 프로필 목록을 구경하려고 카카오톡을 켰는데, 맨 위 ‘생일인 친구’ 목록에 친한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헐, 얘 생일이었어??’


 당황한 나는 친구의 프로필을 엄지로 눌렀다. 프로필 사진 오른쪽 아래에 케이크 이미지가 떠 있고, 프로필 사진 위에서 아래로 색깔 있는 종잇조각들이 축하의 의미로 뿌려지고 있었다. 


‘카카오톡은 내 친구 생일을 안 까먹었네…’ 


생각하며 ‘선물하기’ 버튼을 눌렀다. “OOO님의 생일을 축하해주세요”라는 문구 아래로 ‘친구의 위시리스트’ 코너가 눈에 띄었다. 친구가 미리 받고 싶은 선물을 저장해두면, 나처럼 생일 축하 선물을 사려고 들어온 사람들이 참고해서 선물을 살 수 있게 해둔 것 같았다. 


친구의 위시리스트는 비어 있었고, 카카오톡은 “친구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담아 달라고 요청해보세요!”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뭔가를 ‘요청’해야 한다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받고 싶은 게 있으면 알아서 저장해 두겠지. 그걸 내가 요청까지 해야 할까… 처음엔 친구 생일을 알려준 카카오톡이 내심 고마웠는데, 이쯤 되니 이것도 역시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도, 카카오톡 덕분에 친구 생일 안 놓치고 챙겨줄 수 있는 거니까. 제일 무난하다고 생각하는 ‘스타벅스 달콤한 디저트 세트(조각 케이크+아메리카노 Tall)’를 골랐다. 스벅은 어디든 있고, 흔하면서도 저렴한 이미지는 아니니까. 케이크 한 조각이랑 커피 한 잔이면 적당히 마음 표현하기도 좋으니까. 9,800원짜리 기프티콘을 선물로 보내며, ‘생일 축하해. 당 떨어질 때 먹어.’, 라는 말을 덧붙였다. 


몇 분 뒤 친구는 ‘챙겨 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언제 한번 보자.’는 답장을 보내왔고, 나는 적당한 대답을 한 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에 앉아 멍을 때리는데, 문득, ‘내가 제대로 생일을 축하해 준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에는 친구 생일이 시작되는 시각 00:00에 맞춰 전화를 걸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했는데, 요즘은 친구의 생일이 몇 월인지도 가물가물할 때가 많다. 친구 생일 며칠 전에 친구가 갖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며 문구점과 백화점, 옷가게를 돌며 선물을 고르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젠 카카오톡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오늘 생일이라고 알려주고, 손가락 까딱 몇 번에 선물을 보낼 수 있게 해주니까. 세상 참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발전은 얼마나 나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가. 감탄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내가 제대로 생일을 축하해 준 게 맞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카카오톡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상이 더 자연스러워지면, 나는 지금보다 더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은 나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지만 내가 편안함을 마음껏 누리는 사이에 야금야금 나의 것을 가져가고 있다. 야금야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천천히 혹은 빠르게 축적될 것이고, 어느 날 나는 “아니, 내가 왜 이렇게 변했지?”라는 혼잣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나처럼 변한 모습을 보고, 그대로 흘러가듯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런 서비스도 생길 것 같다. 매달 일정 금액을 카카오뱅크에 넣어 두고, 생일을 챙기고 싶은 지인들 연락처를 등록해두면, 연락처 수만큼 금액을 배분해 생일에 맞춰 선물을 생일자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다. 기본적으로 커피나 케이크 기프티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땐 그 사람이 등록해 둔 ‘위시리스트’ 외에도 그 사람과 내가 나눈 대화나, 그 사람이 검색하거나 쇼핑했던 데이터를 통해 맞춤 선물도 자동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정말 카카오톡이 나보다 지인들 생일을 더 잘 외울뿐더러 지인들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해주는 세심함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이 해야만 했던 일을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로 바꿔주었다. 이제는 기계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기술이 만드는 변화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여유롭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 파도는 내가 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지만, 몸집을 키워 나를 덮칠 수도 있다. 마냥 드러누워 즐길 때만은 아닌 것 같다. 자주 주변을 둘러보고, 나, 이대로 괜찮은 건지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생일 선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선물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물을 고르며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과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버스 안내음이 다음 정거장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STOP 버튼을 누르고 문 앞에 서서 생각한다. 안내음을 듣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쯤이면 다 온 것 같은데…’하는 내 감에 의존해 내리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창밖 풍경에 의존해서. 버스가 멈춘다. 문이 열린다. 내 발이 땅에 닿는다. 주변을 둘러본다. 문구점이 있는지 보려고. 책상 위에 달력을 두고 친구들 생일을 표시하려고. 그것보다 먼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얘 지금 퇴근했으려나. 뜨르르르르른. 뜨르르르르른. 연결음을 조금 급하게 기다리며, 나는 조금 천천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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