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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Dec 18. 2020

서늘한 휴식

퇴사 후, 감사하게 그리고 다행스럽게 여러 일감을 받았다. 


정신없이 일하고, 번 돈으로 밥을 사 먹고, 사고 싶은 옷과 책을 사며 소득 창출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3개월 정도를 바쁘게 그리고 즐겁게 보내며 받은 일을 모두 끝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달째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다행히 이때를 대비해 모아둔 돈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생활비는 걱정이 없지만, 성취감을 주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자기소개서는 쓰는 만큼 실력이 느는 것은 맞다.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아보고, 자소서를 고쳐 나가다 보면 서류 합격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류에서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2차를 넘어 3차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그날은 종일 공허했다. 이번엔 될 거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경우라면 더더욱.


자기소개서 작성에 5시간을 투자했든 10시간을 투자했든 탈락하면 끝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 개의 자소서를 제출했다고 해도 불안하다. 탈락하면 끝,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그래서 주말에도 책상 앞에 앉아 자소서를 쓰고, 더 지원할 곳이 없나 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더 자소서를 쓸 힘이 나질 않아 하루 쉬기로 작정하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불안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퍼져 나왔다. 나 이래도 되는 건가? 나 이룬 게 하나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회사에서 평일 동안 일을 했고 성과를 만들어 냈잖아. 나는 탈락하면 제로인데? 하는 생각을 무시하고 책에 집중하다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꾸역꾸역 자소서를 쓰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책상에 묻고 생각했다. 나 지금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다고…


그날과 다음날은 내내 잠만 잤다. 무기력이 무거운 솜이불처럼 나를 누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샤워하고 동네를 산책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무기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는 쉬면 안 되는지. 오래 생각했다.


취업을 위한 노력에는 정해진 양이 없기 때문에 해도 해도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으로 치면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계속하고 있던 셈이었다. 한 달을 그렇게 생활했으니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한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씩 쉬긴 쉬어야 하는데 마음이 불안하니… 다시 오래 생각했다.


결론은 별거 없었다. 당당히 쉬는 것. 아니 음… 우선은 당당히 쉬어 보는 것. 불안의 원인은 명확했고 불안을 해소해주는 건 취업에 성공하는 것 외에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불안과 함께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저녁 6시까지 자소서와 취업 공부를 하고, 저녁 시간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 그리고 일요일만큼은 자소서 마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하루 온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쉴 것. 늦잠을 자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고.


불안함을 삭제할 수 없어서 불안함을 좋은 쪽으로 이용해보려고 한다. 건강한 마음과 신체가 준비되어 있을 때, 불안함을 절박함으로 바꾸어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일주일 중 하루는 조금은 당당하게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6일을 절박하게, 열정적으로 살 것이다. 


강박으로 가득했던 삶에 약박을 조금 허락할 것이다. 약박으로 흐르는 하루 동안 나는 6일의 강박을 위해 열심히 충전할 것이다.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함이 가끔 휴식을 방해하겠지만 이래야 하므로 하루는 쉴 것이다. 서늘한 휴식일지라도, 지금 나에겐 휴식이 절실하니까. 나에게 건투를 빈다. 다시 불안함과 무기력이 찾아올지라도 맞받아칠 수 있는 원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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