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꾸준히 일하고 있음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어떤 일에 실패해서 멈춰 있을 때와 같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원하는 타이밍에 나오지 않아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나는 이 감정을 오래 느끼게 되면 깊은 무기력증에 빠지곤 했다. 분명 오늘 하루가 지나갔고 나는 열심히 일해서 피곤한데, 아직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오늘 뭘 한 것인가?’ 생각하며 자책했다. 내 미래는 노답이라 생각하며 내 일상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삶이 정체된 시즌을 몇 번 겪으며 나름대로 생각해낸 방법이 있다.
삶이 정체된 자아를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자아를 하나 더 만들어 생산적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정체된 자아는 나의 메인 자아로서 정체된 시기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타이밍은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있어 답답하고 막막함을 느낀다.
이 감정을 상쇄시켜줄 생산적 자아는 정체된 자아가 다루는 성과가 ‘아주 나중에’ 나오는 일이 아니라, 성과가 ‘당장’ 나오는 일을 다룬다. 나는 생산적 자아가 다루는 일로 운동과 글쓰기를 택했다.
주 6일 정도는 근력 운동을 한다. 헬스장에 갈 수 있을 땐 헬스장에서 하고, 여의치 않을 땐 집에서 한다. 이렇게 한다고 내 몸이 갑자기 김종국처럼 되거나 마동석처럼 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계속 좋아진다. 거울을 보면 저번 주 내 몸보다 이번 주 내 몸이 더 균형이 잡혀 있고 탄탄하다. 근력 운동은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항상 보답을 준다.
김종국이 말했다. 먹는 것까지가 운동이라고.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먹는 것도 신경 쓰게 됐다. 트레이너들처럼 매 끼니를 철저히 신경 쓰면서 먹지는 않지만, 운동하고 먹는 식사에서는 탄수화물을 평소보다 반으로 줄이고, 기본 반찬에 닭가슴살과 양배추 샐러드를 추가해 단백질과 섬유질 비중을 높인다. 생산적 자아는 운동으로 만족감과 자신감,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까지 얻는다.
낮 동안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저녁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정보와 논리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내 생각은 구조화되고 정교해진다. 정리된 생각을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순서와 방식대로 노트북에 타이핑한다. 다 쓴 글을 읽으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했는지 고민한다. 고칠 곳이 있으면 고친다.
글쓰기의 과정 동안, 내 생각을 구체화하고 오류를 점검하고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고치는 동안, 나의 세계는 깊어지고, 확장된다. 내가 성장한 모습은 한 편의 글이라는 기록으로 분명하게 남는다.
나의 정체된 자아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좋은 시기를 만나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다.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면서 나의 생산적 자아는 오늘도 열심히 활동한다. 생산적 자아가 자신이 획득한 에너지를 정체된 자아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두 자아의 관리책임자인 나는 자그마하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핸드폰 충전기가 고장 났을 때, 핸드폰을 노트북에 연결해 충전하고 노트북은 노트북 충전기를 통해 충전하는 상황처럼, 언뜻 불안하지만 묘하게 안정적인 에너지 조달 라이프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두 자아를 똑같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