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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Jun 30. 2021

따뜻한 무관심

고향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헬스장을 꾸준히 다녔다. 내 나이대 사람들보다는 아주머니 아저씨분들이 많은 헬스장이었다. 나는 비슷한 시간대에 규칙적으로 나갔는데, 나와 같은 시간대에 나오시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한 번은 쓰려는 기구가 겹쳐 아저씨가 양보해주셨는데, 그 뒤로 오며 가며 서로 가볍게 인사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날씨가 더워져서 운동하기 힘들다, 너는 유산소는 언제 언제 하냐, 와 같은 말씀을 가끔 하셨다. 거의 항상 나보다 늦게 가셨는데, 내가 들어가 보겠다고 인사드리면, 고생했다고 잘 들어가라고 인사해주셨다. 그렇게 아저씨와 나는 두세 달 정도 헬스장에서 마주치다가, 내가 취업해서 서울로 올라간 뒤로 못 보게 되었다. 회사에 합격하고 올라갈 준비를 하느라 헬스장에 못 나갔기 때문에 아저씨한테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기간에 다시 그 헬스장에 나갔다. 운동이라도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서울로 올라간다고 친구들과 마지막 술자리를 가진 지 겨우 한 달 지나 다시 내려왔다. 고향 친구들을 마주칠까 봐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다. 그 감정은 헬스장을 갈 때도 적용됐다. 왜 그동안 헬스장 안 나왔냐고 아저씨가 물어보시는 상황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저 혼자서, 조용히, 운동만 하다가,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버릇처럼 전에 나가던 시간대에 나갔고,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입고 나오시는 아저씨를 마주치게 되었다.

역시 아저씨는 그동안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저…그게…”라고 머뭇거리다가 “서울에서 일하다 다시 내려왔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에게 아저씨는 “아, 그려? 그려 그려. 운동 잘 하고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운동 기구가 있는 쪽으로 가셨다.

원래의 아저씨와는 다르게 무심한 반응이었다. 운동 잘하라고 말씀하시는 아저씨 표정도 원래와 다르게 어색했다. 왜 금방 내려왔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그러신 걸까. 아마 나라도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흐름이니까.

당연하게 밀려드는 물음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아저씨는 내 표정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내 눈동자에 순간, 질문을 삼켰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 척, 다시 전주로 내려온 이유에는 관심 없는 척, 운동 잘하라는 말만 건네고 서둘러 자리를 떴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탈의실 사물함 문을 여는데 딸깍, 마음 한쪽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관심이 너무 따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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