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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Jan 02. 2022

웃음 포인트를 하나 잃었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에는 ‘디스랩 배틀’이라는 경연 방식이 있다. 

두 팀에서 래퍼가 나와서 1:1 혹은 2:2로 서로를 비난하는 랩 배틀이다. 이번 쇼미더머니10 에서는 A라는 래퍼가 B라는 래퍼를 비난할 때, B 래퍼가 속한 팀의 프로듀서가 탈모인 것을 놀리는 랩을 했다. B가 모자를 자주 쓰는데, 모자 안에서는 B의 프로듀서처럼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사였다. ⠀

모발이식 병원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는 나는,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매일 접하기 때문에 랩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래퍼 A가 탈모 고민이 있었다면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

나는 탈모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한다. 

우리 병원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탈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탈모 고민 글을 거의 매일 읽는다는 뜻이다. ⠀

그중에는 자신이 탈모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글도 있지만, 탈모가 이미 심하게 진행되어 우울증까지 겪고 있다는 글도 있다. 이 경우, 자신의 머리를 바라보는 눈이 두려워 친구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물론,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진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유희 거리인 탈모가, 누군가에겐 일상생활과 직업생활 모두 불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고통을 구체적으로 느껴봤거나, 고통을 구체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고통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자신이 탈모로 고통을 받아봤거나,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은 탈모를 유희 거리로 삼을 수 없다. ⠀

나도 모발이식 병원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탈모를 유머의 소재로 사용하곤 했지만, 이후에는 그럴수 없게 되었다. 또한, 그때 내가 했던 말들에 반성하며 내가 모르는 분야를 함부로 웃음의 소재로 삼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처럼, 무지로 행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탈모를 유희 거리로 소비하려 할 때, 누군가는 탈모로 고통받고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탈모 우울증’, 탈모 대인기피증’이라고 검색해보면 하려던 말을 멈추게 될 것이다.⠀

쇼미더머니에 참가한 래퍼들은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어서, 대중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서 참가했을 것이다. 탈모를 소재로 디스 랩을 한 A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발표한 가사에 대해 좀 더 엄격하고 신중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던지는 메시지가 일으키는 파장은 점점 커질 테니까. ⠀

어떤 상황을 마주쳤을 때, 웃을지, 안 웃을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픔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고 그대로 우리를 관통한다. 탈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슬픈 사람 앞에서, 탈모를 굳이 웃음의 소재로 사용할지 그러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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