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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May 24. 202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리고 예술의 힘

소설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을 읽고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이 프로젝트에서 울라이와의 재회 영상은 언제나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무려 716시간 30분동안 1554명의 사람들과 눈을 마추쳤다. 이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85만명 이상이다. 소설 『현대적 사랑의 미술관』은 당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 


주인공은 아키 레빈이라는 영화 음악 작곡가이지만, 이 소설에는 브리티카, 힐라야스, 매니저 디터를 비롯해 마리나의 어머니 다니타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시금 언급되고 이야기된다. 그녀 자신의 입장에서 쓰여진 챕터도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에 자석처럼 이끌리는데, 몇몇은 의자에 앉아 마리나와의 응시를 경험한다. 순수한 응시, 마리나의 눈동자로부터 스스로를 발견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마리나의 퍼포먼스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경험한다. 결국 이 소설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삶에서 예술이 가지는 힘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예술은 일종의 스포츠다. 도약을 숙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은 도약의 경기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그 다음에 뛰어오른다. 출발점은 각자 다를지 몰라도 목표는 같다.”(61p) 


저자 헤더 로즈는 실제로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를 3주 동안 매일 관람하며 네 차례 의자에 앉았다고 한다. 이 경험을 계기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써야겠는 결심을 했다고. 무엇보다 이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로즈의 편지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허락한다”고 답했다는 일화는 그 자체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사실 실존 인물과 그 인물의 활동을 바탕으로 쓰인 허구적인 소설은 자칫 실제의 인물을 잘못 이해하게 될까봐 읽기 두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현대적 사랑의 미술관』의 경우 저자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 참여 경험과 방대한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인지 오독의 우려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결국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과 예술이 가지는 힘 그 자체임을 이해하고 나니 ‘만약 내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앞에 앉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아, 소설 속에서 크리스 버든, 스텔라크, 밥 프레너건,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카타리나 판헤메선 등 다양한 예술가가 언급된 점도 특히 좋았던 부분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대해, 그녀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또한 무척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헤더 로즈의 시선으로 그려진 이 소설은 부드럽고 유연한 방식으로 마리나의 퍼포먼스와 예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객들이 쳐다보니까 꼭 벌거벗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서 이 모든 것의 테마가 ’드러내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기에, 저 불편한 의자에 앉기 전까지는 완전히 이해하질 못했었거든요. 그 정도는 보면 알지 않냐고들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드러내기가 행위예술에 가져오는 효과를 제대로 몰랐어요. 이 공연의 주제는 ’완전히 드러내기‘예요. 관중은 당신을 쳐다보는 어마어마한 힘이죠.” 


* 반디앤루니스 펜벗 10기 활동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

원문 :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6092914


글. 비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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