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0과 1.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뭐라도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든 한다면 비록 1에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0.1, 하물며 0.111111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1이 될 수도, 1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한 단어를 쓰다 보면 한 문장이, 한 문단이, 한 작품이 되고 언젠가는 단행본이 되어 세상에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계속하다가 나는 작가들의 ‘첫 번째 작품’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바로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저자인 델리아 오언스는 저명한 생태학자로 평생을 보냈으며 70이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집필했다. 곧이어 책은 입소문을 타고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거쳐 내가 2019년에 읽은 가장 놀라운 책이 되었다. 도전에 있어서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이 소설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에서 홀로 자란 소녀 카야의 성장소설이자 살인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소설이 경이로운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한 과학서이며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한 시집이기도 하다.
카야는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과 사회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지만 그녀의 곁에는 항상 자연이 있었다. 섬세하고 영민한 카야는 자연의 보살핌을 받으며 ‘습지 소녀’가 된다.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49p)
그러나 카야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적과 싸워야 했다. 더불어 사람들의 멸시 어린 시선과 차별 또한 큰 위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준 것은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부인, 첫사랑 테이트였다. 이들을 만나며 점점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 카야의 모습은 읽는 내내 나의 일처럼 마음을 벅차게 했다가 다시금 철렁이게 했다. 기대 다음에는 실망이 오기 마련이고 이는 카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267p)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겪는 외로움, 소수자이기에 겪는 차별과 멸시, 사랑과 연대를 통한 구원이 촘촘하게 엮여 아름답게 짜인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카야와 함께 웃고 울고 고통스러워하고 체념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보니, 한 사람의 인생에 담긴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놀라운 이야기가 델리아 오언스의 ‘첫 번째 작품’이라니! 경이롭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카야에 대해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정확히 지금 내가 느끼는 희열, 나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읽는다’라고 적었었다. 이 글을 적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쳐 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나는 다시 카야와의 여정을 재개하고자 한다. 함께 떠나보자!
*반디앤루니스 펜벗 10기 활동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
원문 :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6092839
글. 비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