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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드나인 Jul 06. 2020

신혼여행지를 정하는 방법

신혼여행지와 그 방식도 우리에 맞게

그 날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 아니었다. 

한강같이 오픈된 공간에서 햇볕이 계속 날 비출 때 얼마나 힘든지

몇 번 겪어본 나로서는 온도는 따뜻하지만, 햇빛이 없는 그 날이 야외활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 피크닉을 가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남자친구는 

본인 집 근처에서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주는 가게를 찾았고 우리는 오후 2시쯤 한강 풀밭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햇볕이 내리쬐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여름 온도를 너무 얕봤던 걸까, 

원터치 텐트를 풀밭에 던져서 설치하자마자 땀이 나는 게 느낌이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덥고 땀이 옷도 다 적셔서 나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텐트 안에 누워있었다.


내 눈치를 보던 남자친구는 주변을 살피다 큰 나무 아래 그늘 쪽으로 텐트를 옮겼고 

거기서는 그래도 더운 걸 좀 참을 수 있었다. 


더운 게 좀 덜해지자 정신을 차린 우리는 개미가 그나마 적은 쪽에 캠핑 의자를 펼치고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남자친구는 책을 읽고, 나는 한강이 반짝거리는 걸 바라보다가 

갑자기 몇년 전 유럽을 여행할 때의 추억이 떠올라 핸드폰으로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여행 사진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번 나눴던 얘기지만, 

그 전에 한 번도 안 했던 것처럼 설레는 계획과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차근 차근 해나갔다.

하기 싫은 얘기는 한 번 하기도 힘든데, 재밌는 얘기는 몇 번을 해도 처음 한 것처럼 할 수 있다.


우선 신혼여행지에 대해 내가 단호하게 엄포를 놨던 것은 "난 남들이 가는 휴양지는 가기 싫어!"였다.

1) 남들이 가는 흔한 곳은 가고 싶지 않다는 근거없는 반대와 더불어 

2) 우리의 정체성과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합된 다짐이었다. 


보통 신혼여행은 몰디브, 하와이 등의 휴양지, 즉 전형적인 5성급 호텔과 그에 걸맞는 고급 서비스와 

결혼 준비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레져가 있는 곳들로 정한다. 휴양지가 싫은 신혼부부들이 택하는 

차선책은 그래봐야 런던, 파리 등의 유럽 대표 국가들이었다. 

(물론 나도 몰디브 좋고 유럽 여행도 좋다!)


하와이하면 떠오르는 풍경


모든 게 원스탑으로 이루어지는 리조트


그러나 신혼여행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니던 여행의 연장선에서, 오히려 그 여행들의 집약체가 되어야지

정반대의 결을 지니는 것은 뭔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나는 보통 휴양지에서 쉬는 것보다는 돌아다니면서 그 국가, 그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속속들이 둘러보고 

구경하며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선호한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다닌 여행 중,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만 취하는 여행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신혼여행지는 평소에 선택하기 어려운 작은 섬들이나 소도시, 혹은 가기 어려운 국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많다. 남자친구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냐했던(ㅋㅋ) 아프리카나 쿠바 같은 국가들도 예전부터 우선 순위에 있었다. 그런데 내 여행 스타일을 반영하더라도 너무 서로 힘들고 지치는 여행은 

신혼 여행으로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아서 저 국가들은 빼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다보니 스페인이나 영국, 멕시코 등의 소도시 혹은 작은 섬들을 적절히 선택하면 

쉼+액티비티+쇼핑+관광을 조합한 여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우리만의 여행 말이다.


스페인 소도시


쿠바의 올드카들


그 때 남자친구가 나름 단호하게(보통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라서) 말했다. 

"나는 다 떠나서 내 의견만 반영될 수 있다고 하면, 휴양지는 안 가고 싶어"


남자친구도 새로운 걸 경험하는 과정을 엄청 즐기는 타입이라, 예상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여행지보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우리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어하는 듯 했다. 


사실 글로 쓰다보니 별거 아닌 남자친구와의 대화였지만, 

적어도 여행에 관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갑자기 너무 좋게 느껴졌다. 


당연히 서로를 좋아한다면, 특히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면 노력은 항상 깔리는 기본 전제이지만 노력하지 않고도 잘 맞는다면 더할나위가 없으니까!


특히 최근 다른 커플(예비부부)들의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서로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신혼여행지를 정할 때 참고할만한 좋은 방법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1) 서로의 취향을 자세하게 나누는 것

2) 신혼여행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쭉 적은 후,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우선순위를 매길 때는 어떤 걸 포기했을 때 후회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는 최고급 호텔에서 사치를 누리는 휴식도 하고 싶고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돌아다니는 것 중에 전자는 큰 고민 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봤을 때는 너무나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여행 방식과 여행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좁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우선순위가 너무 다르다면, 근교 도시나 가까운 국가들 중에서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 2곳을 공평하게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쩄든 신혼여행은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공식적인 

여행을 떠나는 거니까 한 사람에게만 만족스러운 장소를 택하기는 어렵다.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함께 하는 취향을 만들고 맞춰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오늘 우리의 대화처럼 딱 맞는, 

원래부터 비슷한 취향이나 성향을 가지는 게 더 좋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해서 남이 여기에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둘다 함께 좋아해서 맞출 필요가 없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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