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테라의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중 [느림]의 책은 장편소설이라고 쓰여있는 표지 앞 커다란 글씨를 에세이로 바꾸고 싶을 만큼 저자의 생각들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도대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떠한 생각으로 쓰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을 때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느림]이 일러주었다. 그의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나와는 다른 시대의 사람이고 철학적 생각을 고수한 사람으로 나와는 분명 다르다는 생각에서 시작해야 읽어 나갈 수 있다.
그가 표현하는 것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적인 표현이 나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신간 코너에 무수히 꽂혀 있는 책들이 나를 포기하게 했고, 밀란 쿤테라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이 나를 재능 없게 만들었다.
나라면 이러한 천재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다. 내가 끄적이는 글들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 라는 생각이 나의 손을 묶었고 생각을 멈추게 한 것 같다. 글을 쓰는 천재적 재능이 내게 있다고 생각될 때 도전해봐야 할까. 나는 평생 일기나 끄적이게 될까 답답하지만 현실이다.
어제는 큰 계약건이 들어왔다. 촉박한 일정을 제시하기에 언제까지 발주를 주지 않으면 나도 할 수 없겠노라고 메일을 썼다. 참 당돌하게도 그랬다. 그리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내가 보냈던 메일이 생각나 가만히 있던 이불을 발로 여러 번 찼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이불 킥이구나 느끼면서 말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발주를 주시면 제가 성사시켜 보겠노라고 했어야 했나. 촉박한 일정을 제시하기 전에, 이 계약건을 마무리하면 유럽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어라 일하고 일 년을 쉴까도 생각했다. 나는 이제 성공을 하는구나 싶었다. 일 년 치 벌어들여야 할 금액을 한 번에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그리곤 촉박한 일정을 다시 제시했을 때 화가 치밀었다. 죽으라는 것인가 싶어.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 보건대, 무리한 일정에 병이 들기 전에 잘 마무리한 거라 생각해 보겠다. (한편은 내가 제시한 제안들이 마음에 들어서 내 일정에 맞춰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는 뭐든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에 부딪힌다.
밀란 쿤테라의 독후감으로 시작한 글이 이불 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상적인 생각들로 이어졌지만, 무엇이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언젠가 기적과 같은 일들도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읽고, 일을 한다. 꾸준히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