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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래 Apr 29. 2016

상하이(上海)의 약칭(略稱)의 유래


상하이는 아편전쟁에 패하고 서양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170여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큰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상하이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다시 살펴보면, 


상하이(上海)의 약칭(略稱)은 호(沪) 신(申)을 사용하고 있다. 

당장 호(沪)자는 상하이 자동차 번호판을 봐도 쉽게 찾을수 있다. 

호는 대나무로 만든 어살을 뜻하며 아주 오래전에는 어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하이도로를 유심히 살펴보면 춘신로(春申路)、춘신촌(春申村) 등의 명칭을 만날 수 있다.
1872년 상해에서 발행된 신문 이름이 신보(申報)였고, 지금도 상해를 가로지르는 황포강(黃浦江)을 신강(申江)、황포(黃浦)、헐강(歇江)、황헐포(黃歇浦)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상해를 떠나 소주(蘇州)로 향하면 기업체 이름 중에 춘신(春申) 두 글자를 붙인 경우도 종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춘신군열전의 주인공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62년 고열왕이 즉위하던 해 황헐을 승상으로 삼았고 회수(淮水) 이북의 열 두 개 현(縣)을 봉읍지로 삼아 춘신군에 봉하였다. 그로부터 15년 후 황헐은 고열왕에게 건의했다. “회수 이북 지역은 제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만일에 대비하려면 군(郡)을 설치하는 것이 편할 듯 합니다.” 황헐은 회수 이북 열 두 개 현을 국가에 헌납하고 강동(江東) 지역에 봉해주기를 청했다. 고열왕은 건의를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춘신군은 옛 오나라 도읍지를 하사받아 개인 도읍지처럼 성을 쌓고 꾸미기 시작했다. 옛 오나라 도읍지란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蘇州市)에 해당한다.


후세 사람들은 전국시대 초나라 춘신군 황헐이 지금의 황포강 하류의 물줄기를 북쪽으로 끌어들이는 수리 사업을 했다고 믿거나 황포강 일대를 봉읍지로 받았다고 생각하여 상하이를 비롯한 황포강에 춘신(春申) 혹은 신(申) 혹은 헐(歇) 등의 글자를 넣어 부르고 있지만 춘신군은 기원전 3세기 사람이고, 상하이는 당나라 이후 양자강의 진흙이 퇴적되어 형성된 것이다.


황포강(黃浦江)이니 신강(申江)이니 명명한 것은 물론이고 상해 곳곳에 보이는 춘신(春申)이란 용어는 전국시대 초나라 춘신군 황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저 있다면 역사상 유명인사를 끌여들여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후세 중국인들의 과시욕이 아닐까?


중국 역사나 문화를 보고 살펴보면, 뭘 하나 보더라도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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