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문장이 있다.
‘있을 유’에 ‘예도 례’ 유례라는 이름을 지어준 외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안고는 불쑥 ‘있을 유’에 ‘아름다울 미’ 유미 같은 이름이었으면 좋지 않았겠냐고. ‘예의 있어서 어쩌라는 건지 난 영 모르겠다’ 투덜거렸더니 ‘예의’ ‘도리’ ‘배려’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완성이라는 말씀. 더 이상 이름을 두 번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대해(번외편: 유래) 낙심치 않기로 했다.
회사에선 아주 좋은 일과 아주 불행한 일이 겹쳤고 개인적인 관계와 살아감에 있어선 결국 잘된 일이 있었다. 탓하기 좋고 놓아버리면 그만이라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곧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살길을 방도 했다. 기뻐하되 긴장을 늦추지 않는 하루하루 덕분에 나를 사랑한다는 것, 부끄러움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내 노력을 존중한다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고 무수한 감정이 오간다. 그중 무엇이 진짜인지 발견해 내려면 정신, 나 자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