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남들이 하는 이런 얘기들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미혼이던 서른 중반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 사람이 물었다. "근데, 결혼 자체가 정말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외로워서 하고 싶은 거예요? 혹시나 외로워서라면 결혼에 목숨 걸지 말고 혼자 살아요~"
그러자 미혼이던 지인이 말했다. "맞아요. 저희 엄마도 뭐 하러 시집가느냐고, 가지 말라고 그래요~"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열이면 열,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 의견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눈치 없이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말했다가... 비싼물가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대란에 신혼집은 어떻게 마련하냐는 둥, 어마무시한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 거냐는 둥,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냐는 둥 공격적인 질문들이 쏟아져- 흡사 정치인이라도 된냥, 우물쭈물거리며 곤란했던 적이 있다. 그 뒤부터는 입을 꾹 닫고 듣기만 한다. 그들의 말이결코 틀리거나, 부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내가 치우지 않으면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빨간 물때가 끼기 시작한 화장실 문을 열고 긴 한숨을 뱉어낸다.샤워기헤드를 최대한 당겨 이곳저곳에 뜨거운 물을 잔뜩 뿌린다.
독한 세제를 집어 바닥을 박박 닦다가 어떤 질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고생 길이 훤한 결혼을 왜 하느냐"는 말은 곧 "결혼하지 않으면 쉬운 길로 간다"라는 것이고... 쉬운 길로 가는 것은 곧 인생에 편한 길만 선택하고 산다는 말이 되나?...
나는 마흔을 막 넘어선 라떼세대이다.
라떼세대들 사이에서
요즘 MZ세대들은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다.
(자영업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아르바이트생들의 놀랍고도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타인을 위한 배려나 연장자에 대한 공경, 공동체에 대한 희생, 대가 없는 베풂을 꺼려하기에 라떼세대들은 그들을 절대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가 없다. 그들의 성품이나 배움이 낮아서가 절대 아니다. 그들은 부모에 의해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보호받아 왔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최대한 상처받지 않게,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즐겁게만 살도록 부모로부터 과잉보호받아왔기 때문이다.
(어느 세대가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세대마다 뚜렷한 장점과 단점을 있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문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양보하고 희생하는데 익숙한 라떼세대들도 고생하고, 대우받지 못해 받은 내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 결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너는 결혼하지 말고, 적당히 벌어서 즐기며 살아라~"라는 말은... 라떼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던 MZ들의 단점을 부추기는 말이라는 것이다. 요즘 MZ세대들은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 딱 정해진 시간만큼만 한다. 야근, 추가근무, 휴일근무는 1.5배를 준다고 해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한 투자로 분리해 놓는다. 심지어 연애에 대한 시간과 감정조차도 적당한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고생길이 훤한 그 길을 가지 말라는 것은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나... 내 자식이 파트타임만 일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은 할 필요를 못 느끼고, 국내여행만큼이나 해외여행을 즐기는 삶을 보며 "잘했다" 할 부모가 있을까?
더 쉽게 말해
"내 딸, 아들이 일정시간만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긴 시간을 친구들과 하는 음주가무나 여행, 보기에 좋은 취미 생활을 하느라 독립할 의지나 능력조차 없이 40살, 50살이 될 때까지... 80세가 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을 본다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결혼은 고된 것이다.
행복하려고 나은 아이들은 내 발에 족쇄가 되어 부모들을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키고, 부부는 살림과 야근에 치여 서로 눈 한 번 바라보지 않는 삶이 된다. 서로 '내가 더 힘들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짜증스러운 공기만 집 안에 가득하다.
그러나 다른 복잡한 문제들은 다 제쳐두고, 세대 간의 이해와 갈등을 주제로 "결혼"을 바라본다면...
"요즘 애들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라는 말보다
'결혼이라는 고생길을 걷지 않았으면...'하고 생각하는 딸과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가끔 철 없이 굴고, 돈의 값어치를 하찮게 생각하고, 즐기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때에도 말이다.
그들은 그저
부모의 양육방식에 맞게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즐기며, 최대한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니 MZ세대들을 미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