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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마주마 Feb 05. 2024

마흔. 두 번째 인생!

나에게 주어진 인생 2회 차!

꿈을 꾼다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제 막 장래희망을 종이에 적어 내는 초등학생들일까?

인 서울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등학생들일까?

정작 꿈 전선에 서 있는 대학생들은 취 걱정에 꿈보다는 연봉을 1순위로 결정하는 것이 현실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을 찾는 시기는 정작, 장래희망란에 생각나는 대로 적던 초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 되는 게 아닌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년 새 학기마다 여러 장의 "가정환경 조사"를 적어서 담임선생님께 제출해야 했다. 장래희망이나 취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가정 형편을 참고한다는 이유로 가족이 몇 명인지, 부모의 학벌은 어디까지인지, 집은 자가인지 월세인지를 조사하는 망한 서류였다.



나는 새 학기가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아빠와 나는 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와 성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반에 한 명씩 있는 말기. 눈. 광 공격으로 매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만 했다.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불리는 영혼까지 맑고 순수한 아이들"너는 왜 아빠랑 성이 달라? 왜?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어?" 하고 새 학기마다 나를 괴롭게 했다. 그들이 악의를 가졌다면 화라도 냈겠지만 이혼과 재혼의 단어조차 부모에게 배울 일이 없었던 아이들이었기에 내 마음은 더 괴로웠다.



2학년쯤인가... 항상 그렇듯 봄이 되고, 이런저런 종이들의 빈칸을 채워 선생님께 제출했다.  나꿈은 "이소라 같은 미스코리아가 되는 것"이었다. 키가 크고 늘씬해서이기도 하지만, 티브이에 나온 사람 중에서 마침 생각 난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나를 앞으로 부르셨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는 좁은 걸음으로 선생님께 걸어갔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단호한 말투로 내게 말씀하셨다.

"이소라는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슈퍼모델이야~"



9살이던 나는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의 차이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예쁘고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데... 워낙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지적 정보를 너무 정확하게 전달해 준 선생님이 조금 서운했다. 그 장면은 내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성인이 돼서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두 단어의 차이를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양상추양배추도 구분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리를 그렇게 하는데도 말이다.






돈 많은 사람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았던 나의 10대.

아파트보다는 빌라, 빌라보다는 주택, 주택 중에서도 반지하라는 셋방이 흔했던 시절.

가난은 나에게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고, 꿈을 향한 내 갈급함은 쌓여만 갔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내 삶은 온통 아이들 위주로 흘러갔다. 나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보풀 가득한 끔찍한 레깅스가 전부였다. 아이들 옷을 철철이 사는 것도 벅차서 내 옷은 살 수도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내복과 겉옷과 양말과 속을 사내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중에도 가장 괴로운 것은...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봄이 좋다.

봄이 너무 좋아서, 봄이 너무 싫다.

봄만 되면 내 가슴은 설레어 부풀고,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들이 사지를 쭉쭉 펴서 기지개를 켠다. 



그러면 나는 서랍에서 12월에 미리 사둔 예쁜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리고 나의 꿈을 계획해 본다.

"노래를 배워볼까? 사이버대학에 들어갈까? 어떤 학과들이 있지? 국가자격증은 뭐가 있을까..."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후기를 찾아보고, 전화 상담을 받아보지만 매년 결과는 똑같았다.

현실적으로 불. 가. 능

 






수많은 봄을 지나고 보니,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컸다. 남편의 벌이도 점점 나아져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늘어진 옷들은 다 버리고, 이제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일만 한 옷과 화장품들을 사용한다.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좋은 40대니까!



이제는 봄이 괴롭지 않다.

꿈 찾아 괴롭던 나의 30대는 지나가고, 인생풍파 속에서 눈 맞고, 바람맞으며 나의 40대는 단단해졌다. 꿈을 이룬다는 것. 그 막연하고 흐릿한 것을 잡고 싶어 애쓰던 나는 이제 삶 속에서 내 꿈을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다. 나머지 5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두 번째 직업을 배우고 있다. 마흔이라 늦었다고, 지금 배워도 늦었다고, 취업이 어려울 거라고 하는 말들도 있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좋아요!"라고 반기는 사장님도 있고, "도전이 멋있다. 나도 뭔가 배워야겠다"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해"라고 말할 때...

아이들에게 "네 꿈은 뭐니?"라고 말할 때...

아이들에게 "올해 뭘 해보고 싶니?"라고 말할 때, 나는 대답을 먼저 이야기한 아이에게 물어본다.   

"엄마는 이번에 자격증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해, 너는 수학이나 영어를 어디까지 배울 수 있겠니?"

"엄마는 60살에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야. 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엄마는 올해 안에 우리 집에서 작고 재미난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어, 넌 어떤 걸 해보고 싶니?"



나이가 든 엄마라고, 뱃살이 흐물흐물 거리는 엄마(아이들이 자꾸 내 배를 만지며 하는 얘기다...)라고 해서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고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쉽다. 나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뭔가를 해보고 싶다. 엄청난 일이 아니라도, 그저 사소한 뜨개질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내가 손만 쭉 뻗으면 언제든지 다양한 sns를 통해서 수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저명하고, 유명하며, 친절하고, 자세한 강의들.


많은 걱정과 고민을 뒤로 하고, 피부미용사 과정을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흉흉하던 코로나 시절, 엄마의 시름을 잊게 한- 유투브 독학으로 배운 뜨게질 인형들




내 친정 엄마도 지독한 코로나를 겪으며 심한 우울감에 빠지셨을 때 유튜브로 뜨개질을 배우셔서 지금은 엄청난 장인의 경지에 오르셨다.



그러니 칼질 한번 안 해본 사람도 이제 요리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편스토랑 어남선생"께서 남자들을 위한 요리법까지 숏츠로 만들어주셨으니 말이다. 조금만 알아보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뚝딱뚝딱 음식맛을 낼 수 있고, 요가원에 다니지 않아도 두 다리를 쫙 찢어 배꼽을 바닥에 붙일 수 있다. 


물론 배움의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집에 있는 것이 행복하고 편안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 밖에 나가서 열정을 쏟아내야 하는 사람들은 또 그것대로 만들어가면 된다. 늦었다고, 남은 긴긴 생을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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